‘금전 만능주의’에 빠져 도덕적 마비에 다다른 우리 사회
금전 관련 범죄 형량 높여야

사진=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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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감리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비리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낙찰받기 위해 감리업체들끼리 서로 짜고 들러리를 서주는 등의 담합행위도 문제지만 그보다도 이들 업체를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의 비리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레이스’, ‘양손잡이’ 등 은어 난무한 감리 심사

뇌물을 받은 한 심사위원은 자신의 아내에게 “이제 일해서 돈 버는 시대는 지나갔다.” “여행 가려면 돈 벌어야 해요.” 등의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일부 심사위원들은 업체끼리 뇌물 액수를 경쟁을 시키는 소위 ‘레이스’를 붙이기도 했다. 또 경쟁하고 있는 두 업체에서 모두 뇌물을 받는 ‘양손잡이’도 있었다.

이들 심사위원은 감리와 관련된 일을 하는 교수거나 공무원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학식과 견문이 있는 ‘식자층(識者層)’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조차 돈은 어떻게 벌든, 돈만 있으면 된다는 ‘금전 만능주의’에 사로잡혀있고, 또 뇌물을 받는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 아내에게 ‘일해서 돈 버는 시대는 지나갔으니 뇌물 받아 여행 가자’는 내용의 문자를 보낼 만큼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있다는 얘기다.

◆돈 때문에 무너지는…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

지금 우리 사회는 돈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치가 돈 때문에 훼손되는 광경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은행 직원이 고객의 서류를 위조해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대출받아 횡령하고 새마을금고 직원은 아예 고객이 맡긴 예금과 적금을 자기 돈처럼 빼가기도 했다. 이제 이런 소식은 뉴스에서조차 크게 다루지 않을 만큼 예사로운 일이 됐다.

돈 때문에 부모 형제의 인연을 끊는 것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돼버렸고, 돈 때문에 가족끼리 송사가 붙어도 당사자가 유명 가수 정도는 돼야 세간의 관심을 끌 만큼 둔감해졌다. 재벌가의 이혼소송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딸이 아버지의 비자금을 증거라며 공개적으로 내놓는 세상이 됐다.

한마디로 돈 앞에서는 직업인의 윤리도, 인륜도 한갓 거추장스러운 게 돼버렸고 돈만 가질 수 있다면 비자금에 대해서조차 털끝만큼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도덕적 마비가 만연하고 있다.

◆4년 사이 사기 범죄 50% 증가····‘사기 공화국’ 오명

이러한 상황을 일부 후안무치한 사람의 탓을 돌리기에는 우리 사회의 병이 너무 깊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사기 범죄는 최근 가파르게 늘고 있다. 사기 범죄 건수를 보면 2021년 29만4000여건에서 2022년 32만4000건에 달했고, 지난해 33만건으로 늘었다. 전체 범죄에서 사기 범죄가 차지하는 비중도 수년째 20%를 웃돌고 있다.

더구나 한 조사에 따르면 사기 범죄는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은 경우가 5건 가운데 1건에 불과하다. 사기 피해자의 80% 이상이 신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고하지 않은 사기 피해를 모두 합치면 경찰청 통계보다 다섯 배는 많을 것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사기 공화국’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인정해야 하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금전 관련 범죄, 형량 높여야

돈 때문에 벌어지는 비리나 범죄는 그 결말이 참담하다. 사기당한 개인은 결국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금융기관이나 기업에서 벌어지는 금전 범죄는 조직의 평판을 해치는 것은 당연하고 심하면 존립마저 위태롭게 만든다.

LH가 발주한 감리업체 심사에서 뇌물을 받은 심사위원은 그 돈으로 ‘여행’ 가서 ‘돈은 일해서 버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며 뿌듯했을지 모르지만, 엉터리 감리로 부실 시공된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들은 안전을 위협받게 된다.

이런 사회적 병폐에 대해 법의 칼을 들이대는 것은 가장 ‘하수(下手)’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금전 만능주의·도덕 마비 상태는 법 이외에 방법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가상화폐 테라-루나 사태를 일으킨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몬테네그로에서 붙잡힌 뒤,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재판을 받고 싶어한다는 얘기가 있다. 한국의 처벌이 그만큼 솜방망이기 때문이란다.

돈과 관련된 범죄에는 더 중한 벌을 내려야 한다. 적발돼 처벌을 받더라도 ‘남는 장사’라는 그릇된 인식의 싹을 잘라야 한다. 또 파렴치한 금전 범죄에 대해서는 성범죄처럼 신상도 공개해야 한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사기 범죄자의 재범률이 42.4%에 달하기 때문이다.

뇌물도 받아본 사람이 또 뇌물을 받고 사기도 쳐본 사람이 또 사기를 친다는 얘기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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