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급 재료’, ‘최고의 장인’…모두 허상
노동착취로 수십 배 폭리
한국에서는 경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N차 인상’ 폭주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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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소위 ‘에루샤’로 대표되는 명품 브랜드의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도 제품의 재료나 제조기법에서 차이가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고 소비자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다.

캐시미어 제품은 몽골 고원지대에 사는 산양 1마리에서 겨우 100g 정도 채집되는 귀한 털로 만든다든지, 악어백 하나를 만들기 위해 2∼3마리의 악어가 필요하다는 그런 얘기였다. 그리고 대량생산이 아니라 수십 년 숙련된 장인이 직접 수작업으로 만든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 이탈리아, 노동착취 적발된 디올과 아르마니 등에 사법 감시 명령

이탈리아 밀라노 경찰은 크리스챤 디올의 노동착취 정황을 적발해 재판에 넘겼다. 밀라노 법원은 크리스챤 디올의 이탈리아 지사의 가방 제조업체에 대해 노동착취를 방치, 조장한 혐의로 사법 행정관이 1년 동안 이 업체를 감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판결문을 보면 ‘최고의 장인’은 허상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이나 필리핀에서 온 불법체류자를 고용해 일을 시켰고 감시 카메라를 달아두고 24시간 일을 시켰다. 재판부는 노동착취는 이 공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화된 제조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크리스챤 디올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하청 업체도 불법체류 중국인을 고용해 1시간에 4000원 정도의 저임금으로 하루 평균 10시간씩 일을 시키다 적발됐다. 밀라노 경찰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불법체류자가 머무는 기숙사는 지저분한 화장실, 골판지로 막아놓은 창문 등 열악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밀라노 행정법원은 이 업체에 대해서도 사법 행정관의 감시를 받도록 조치를 내렸다.

◆ ‘최상급의 재료’도 허상에 불과할 수도

‘최상품의 재료’라는 주장도 의심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캐시미어 제품으로 유명한 로로 피아나는 페루 원주민을 착취해 원재료를 공급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미 안데스산맥에 서식하는 라마의 일종인 비쿠냐의 털을 이용해 최고급 스웨터를 한 장에 9000달러(1200만원)에 팔면서 털을 채집하는 페루 원주민에게 불과 280달러(36만원)만 지급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착취와 헐값으로 공급받은 원재료로 만들어 상품 원가는 판매가의 수십 분의 1인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385만원짜리 디올 백은 원가가 8만원에 불과하고 매장에서 267만원에 팔리는 아르마니 백의 원가도 14만원에 그쳤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보면 미국 내 매장에서 1만1400달러(1600만원)에 팔리는 검은색 버킨백25 기본 모델의 원가도 1000달러(14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 명품업체 유독 한국에서만 가격 인상 단행

여기에다가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면 명품 브랜드들은 국내에서 떼돈을 벌면서도 매년 가격을 올려왔다. 그래도 과거에는 1년에 1차례 인상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1년에 여러 번 가격을 올리는 소위 ‘N차 인상’도 서슴없이 해치우고 있다. 루이비통이 2월과 7월, 에르메스는 1월과 6월에 일부 제품 가격을 올렸다. 지난해 네 차례 가격을 올렸던 구찌도 6월에 가격을 올렸다. 프라다도 올해 두 번, 고야드는 세 번째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롤렉스 역시 올해 두 번 가격을 올렸다.

그렇다고 이들 명품 브랜드들이 세계 어디에서나 가격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명품 브랜드들이 최대 50% 할인에 나섰다. 베르사체, 지방시, 버버리, 발렌시아가 등의 명품 브랜드가 티몰 등 중국 온라인 플랫폼에서 30%에서 50%의 할인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의 매출 부진이 원인이라는 게 블룸버그의 해석이다.

이러니 값이 올라도, 경기가 나빠져도 명품 사랑이 식지 않는 한국 소비자만 ‘호갱’ 취급당한다는 얘기가 나올 법한 게 현실이다. 또 명품업체들은 국내에서의 평판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조 단위 매출에 쥐꼬리 기부라는 보도가 십 년 가까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지만 ‘쇠귀에 경 읽기’인 듯하다. 더이상 명품업체들에 선의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2년 전 한 가수가 연예기획사와 음원 정산으로 갈등을 빚을 때 흥미로운 얘기가 흘러나왔다. 연예기획사의 대표가 루이비통 매장에서 감자탕을 시켜 먹었다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됐지만,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얘기가 흥미로운 것은 명품업체에 고객은 ‘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부유한 소비층이 정신을 차리는 수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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