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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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지난 2일 제22대 개원식을 열었다. 임기가 시작된 지 96일 만에 정식으로 이를테면 ‘개업식’을 한 것이다.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의 선서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 윤석열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다. 왜 그랬을까? 새로 당선돼 임기를 시작하는 대통령의 취임식에 야당 대표나 대법원장 등이 불참한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상상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축하의 자리가 비정상으로 뒤틀렸다. 국가 최고위직인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1987년 개헌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특검과 탄핵을 남발하는 국회를 먼저 정상화시키고 초대하는 것이 맞다”, “살인자 망언을 서슴지 않고 사과도 없다” 전날 대통령실이 밝힌 불참 이유.

국회의장 우원식의 개원사가 민망하다.

“갈등하고 대립하는 속에서도 할 일은 하는 것이 정치다”, “갈등이 깊을수록 국민의 눈으로 보고, 해법이 어려울수록 국민의 목소리를 담겠다”

대통령비서실장 정진석은 지난 4일 “대통령을 향한 조롱과 야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국회에 가서 대통령이 곤욕을 치르고 오시라고 어떻게 말씀드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을 자신이 건의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용산 대통령실 강당에서 전 직원 조회를 주재하면서 “국회가 이성을 되찾고 정상화하기 전에는 대통령께 국회에 가시라고 할 수 없다”며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국회의장단이나 야당 지도부가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서 아무런 사전 조치도 취하지 않고 대통령 보고 국회 와서 망신 좀 당하라고 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을 국회와 야당 탓으로 돌린 것이다.

시비를 하자면 그의 말투부터가 귀에 거슬린다. ‘오시라고’ ‘가시라고’ ‘말씀드릴 수 없다’니 대통령이 무슨 ‘왕’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비서실 회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 댓글에는 “난무하는 그 말들이 모조리 사실이다. (국민대표들을) 직면할 용기가 없다는 고백이다”라는 비판이 따랐다.

국민의힘 소속의 한 재선의원은 “매일 싸우기만 하다가 (국회 개원식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이제 (대화정치의) 물꼬를 튼다는 점을 보여주나 싶었는데, 하루도 못 갈 상황 아니냐”며 “국민들에게 정치 혐오감만 키워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윤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등 국민들의 실망감이 커지는 가운데, 일련의 사태로 타협이나 포용과 같은 정치력 대신 ‘불통’ 이미지만 강화되고 있다는 부담감도 나온다는 반응도 있었다. 대통령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점만 눈에 띄는 상황이라는 것.

두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를 찾아가 개원을 축하하고 협조를 구하는 모습이 ‘정상’일 터, 대통령의 개원식 불참은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준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유도 옹졸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검과 탄핵을 남발하는 국회를 정상화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을 불러다 피켓 시위를 하고 망신 주기를 하겠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있지도 않은 일을 예상하는 신통력이라도 가졌다는 말인가.

언론들은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정 브리핑에서 연금·의료·교육·노동 등 4대 개혁을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절체절명의 과제들이다. 이를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했다면서 그럼에도 대통령은 이를 위해 필수적인 국회와의 협치에는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대통령은 “제가 이때까지 바라보던 국회하고 너무 다르다”며 야당 대표와의 회담에 선을 그었는데 국민들이 보기엔 오히려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던 대통령과 너무 다르다”고 일침을 가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회와 사이가 안 좋고 푸대접이 예상되더라도 빠짐없이 개원식에 갔다. 2008년 대통령 이명박이 18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야당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민주당은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을 요구하며 빨간 머플러와 넥타이를 둘렀다. 민노당은 본회의장 밖에서 ‘국민을 이기는 대통령은 없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한 뒤 개원식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4년 뒤 이 대통령이 19대 국회 개원식에서 연설할 때는 의석에서 단 한 차례도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1996년 대통령 김영삼의 15대 국회 개원식 연설 때, 야당은 여당의 ‘야당 당선인 빼가기’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대통령을 쳐다보지 않았다. 2004년 대통령 노무현이 17대 국회 개원식장에 입장할 때는 일부 의원들이 의석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물론 웃고 떠들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역대 대통령들은 이를 피하는 대신 정면 돌파를 택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존중을 표하고 협치를 구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대통령이 개원식에 불참하자 야당에선 “국민으로부터 사실상 버림받은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아 후련하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대통령이 개인적인 굴욕을 감수하고 국회에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여론의 비난 화살은 모르긴 몰라도 소란을 피웠을(?) 야당으로 향했을 것이다.

장점도 많아 보이는 윤석열이 이처럼 스텝이 꼬이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의 안하무인과 옹고집이 문제다. 참모진이나 가까이 접촉하는 인사들 중에 제대로 조언할 ‘대인’이 그렇게도 없다는 말인가. 아닐 것이다. 화근은 결국 대통령 자신이라는 얘기다.

광운대 특임교수 진중권은 윤석열을 두고 “현실을 떠나서 가신들을 데리고 극우 판타지의 세계로 집단 이주하신 듯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고, 그냥 거기서 그렇게 사세요”라고도 했다. 그는 “생쥐도 시행착오를 통해 미로 속에서 길을 찾아가던데…”라며 “그 머리도 안 되면 뭐 할 수 없지”라고 꼬집었다. 모욕감을 느낄만한 말들이다.

우파의 책사(策士)라는 변호사 전원책도 의료파업과 관련해서 윤석열에게 조언하는 인물이 있다고 추측하며 “대통령은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정권의 명운을 이 문제에 걸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말은 또 뭔가. 전원책은 “임기 5년제 단임제에서 마지막 1년은 힘 다 빠진 대통령이고 사실은 지금 남아 있는 기간은 1년 반 정도인데 이 명운을 하필이면 의료 파업에다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언급하며 “쉽게 말하면 국민들은 윤 대통령뿐 아니라 윤 대통령 부부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며 이제부터라도 국정운영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들 안타까워서 하는 말들일 것이다.

존 로크가 <통치론>에서 강조했던 말이 있다. “연극의 부도덕성을 혐오해 단지 퇴장하기 위해 극장에 입장했던 로마 제국의 ‘대(大) 카토(Cato Censorius)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이런 체제는 강력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 할지라도 연약한 피조물보다 훨씬 생명력이 약할 것이며 태어난 날을 넘기기도 어려울 것이다” 불통에 대한 경고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싫다고 상대해야 할 상대를 상대하지 않는 것은 직무포기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이게 바로 ‘금도’(襟度)의 반대말 ‘협량’(狹量)이다. 권력자들이 항상 경계해야 할 ‘부덕’(不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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