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지난 대선 이후 한국 정치를 특징짓는 강력한 요인은 제1 야당의 당수인 이재명 대표의 압도적 규정력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불과 23만 표 차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야당 후보답게 대선 패배 이후에도 국회의원 보궐 선거 당선, 당 대표 선출, 총선 압도적 승리, 대표 연임 등 한국정당사에 전례가 없는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치인답게 대선 주자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11개 혐의에 7개의 재판이 진행 중인 현재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통 진보 정당의 맥을 잇고 있는 민주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정당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한국 정치에서 여야와 보수 진보의 양 진영이 상호 불신하며 적대하는 가운데 각자도생의 양상을 보이는 패턴은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여야 관계가 지금처럼 적대적으로 거의 타협 불가능한 국면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으로도 꽉 막힌 정국을 풀지 못했다. 여야 대표 회담에서도 소통과 협치의 단초를 열지 못했다.

정치의 본령이라고 일컫는 포용과 관용을 주문하는 것도, 갈등의 조정이라는 원론적 명제의 강조 모두 공허할 뿐이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인 걸까.

우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다. 지난 대선 때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이 대표의 법정 이슈는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있을 때까지 한국 정치를 옥죄는 결정적 뇌관이 아닐 수 없다. 오는 10월로 예정되어 있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의혹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후에는 사법적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까. 이 대표가 재판을 받고 있는 어떠한 사건도 다음 대선 이전에 대법원의 최종심이 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1심 판결 이후에도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과 적대적 관계는 해소된다고 볼 수 없다.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지금까지의 정치적 경로로 미루어 볼 때 이 대표의 정치적 위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피선거권 박탈 이상의 형량이 나오면 이 대표와 측근, 민주당은 타깃을 검찰에서 사법부로 바꿀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민주당 어떤 의원은 “이재명 대표의 피선거권이 박탈될 경우 재판부가 국민적 분노와 저항을 받을 것”이라며 사법부를 협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 대표 재판을 대하는 민주당의 향후 기조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러한 야당의 근본적 문제의 다른 한 켠에는 여권의 또 하나의 리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해병대원 순직 수사에서 대통령실의 외압이 행사됐느냐의 문제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 주가조작 사건 의혹 등 여권의 사법적 문제다. 해병대원 특검과 김 여사 특검과 관련되는 대통령의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야당은 이를 대통령 탄핵의 명분 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야의 이러한 문제들이 다른 정치적 사안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여야 정치 수장들의 생존과 관계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치 현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정치는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적 환경에 내몰려 있는 셈이다. 상대가 제거되지 않으면 내가 죽는 최악의 게임이 지금의 한국 정치를 구성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탄핵과 특검이 정치의 주된 전장(戰場)이 되고 정권을 잡지 못하면 단순히 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사법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정치에 투사되는 한 정치가 올바로 갈 수는 없다.

조선조 사문(斯文)의 난적(亂賊)으로 상대 당을 규정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나머지 결국 살육으로 갔던 조선의 붕당정치의 재판(再版)을 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해 상대의 존재조차 부인해야 했던 조선왕조 당인들의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당색(黨色)의 차이로 모든 것을 규정하고 물리적 목숨까지 담보해야 했던 왕조시대로 되돌릴 수는 없다. 사법기관이 존재하고 국민의 집단지성이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진실은 따로 존재한다. 법정에서의 유무죄 여부도 진실을 가릴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법치라는 이름의 민주주의가 보유하고 있는 제도적 장치에 의한 판단은 존중해야 한다.

이미 기소되어 있는 야당 대표의 혐의가 대선 전까지 사법적 차원의 진실이 밝혀질지 불확실하지만, 최소한 1심과 2심 정도면 민에 의한 정치적·도의적 판단은 내려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며, 사회의 집단지성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해병대원 수사 외압 여부도 특검이라는 제도를 활용해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이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제안한 바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가 국민 일반에게 신뢰를 준다고 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가 정치의 본원적 영역을 찾기에 권력자들의 사법의 문제가 너무 크고 결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적대를 이용해서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시도의 한계는 명확하다. 상대를 인정할 수 없는 적대에 의한 공생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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