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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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귀하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입니까. 아니면 조선총독부 제10대 총독입니까.”

조국혁신당 대표 조국이 광복절인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 외교안보 책사인 국가안보실 1차장 김태효 씨, ‘자위대가 주권 국가로서의 교전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 영원히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대단히 편협하다’고 합니다. 그 윗자리 국가안보실장에 앉은 신원식 씨, ‘대한제국이 존속했다고 일제보다 더 행복했겠냐. 이완용이 매국노였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라고 합니다.…일제 밀정 같은 자들을 요직에 임명한 자가 바로 왕초 밀정입니다” 대통령 윤석열을 겨냥했다.

국민의힘은 원내 수석대변인 논평을 내고 조국에 대해 “당장 의원직을 내려놓고 만주나 평양으로 떠나라”고 요구했다. “조국 대표가 말이 아니라 그저 배설을 했을 뿐”이라고 비난한 뒤 “조 대표는 대통령을 향해 ‘귀하’라는 정체불명의 호칭을 씀으로써 공당 대표의 자격이 없음도 시인했다”고 주장했다.

발언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귀하’라는 호칭이 문제가 됐다. ‘귀하’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시간을 2019년 10월로 되돌려, 그때는 여야가 서로 달랐던 국회 대정부 질문장으로 가보자.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 의원 박명재는 우선 법무장관 조국을 단상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한 채 앉은 자리에서 국민과 함께 질문을 들어달라고 했다. 박명재는 이어 조국을 ‘정중’하게 대하겠다며 ‘귀하’라는 호칭을 사용해 질문을 했다. 이런 말들이 오고가는 사이 의석에서는 여야 간 고성과 야유가 난무하는 등 국민의 대의기관이 저잣거리 싸움판으로 변했다.

그때 원한이 맺혔던 것일까. 조국이 ‘귀하’라는 말을 소환했다.

‘씨’나 ‘귀하’라는 말은 물론 상대방 혹은 듣는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는 2인칭 용어다. 한편으로 이 말은 그러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면서 높여 주는 척 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듣는 사람이 모멸감을 느끼거나 수치심을 가질 수 있는 용어다.

답답한 국회를 벗어나 보자. 일반인들은 어떤가. 상대를 부르는 호칭이 여간 다채롭지가 않다. 우선 ‘김씨’, ‘이씨’, ‘박씨’가 있고 ‘정가’, ‘최가’, ‘윤가’ 등이 있다. 가까운 친구 사이 혹은 허물없이 대하는 후배에게 주로 쓰이는 호칭이다. ‘어이’나 ‘유(you)’ ‘당신’ ‘그대’ 등도 같은 부류다. 조금 더 아래 사람이나 장난삼아 상대를 부르는 말로는 ‘야’, ‘야마꼬’ 같은 말도 있다.

상대를 높여 대우하는 단어도 많다. ‘귀하’가 대표적인데 ‘귀공’과 ‘귀측’, ‘귀관’, ‘대감’ 같은 말들이 같은 범주다. 한때 길을 가다 “사장님!”하고 부르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뒤를 돌아본다는 말이 있었다. 자영업이 한창 꽃피울 때의 얘기였을 것이다. 보통 주고받는 명함이 다 ‘사장’이나 ‘회장’이었다. 대기업 회장이나 사장, 임원들이 들으면 못마땅했을 수도 있는 직함.

언론사에서 선배들이 후배를 부르는 용어도 이채롭다. 무슨 운동선수도 아닌데 ‘선수’라고 부르고 전문가나 골퍼도 아닌데 ‘프로’라고 한다. 뭘 잘하고 믿을만하다는 뜻일까. 물론 ‘귀하’라는 말도 많이 쓴다. “김 프로! 퇴근길 한잔 어때?” “귀하는 왜 잔을 들었다 놨다만 하나!” 상대의 이름이 사라진 지는 오래다. ‘박사’, ‘선생’이라는 말도 자주 쓰인다.

식당에서는 난데없이 ‘이모’나 ‘언니’라는 말이 오고 가고 호텔 미화 담당 여직원들은 언제부턴가 ‘여사님’으로 불린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말도 있는데.

필자는 논평이나 칼럼에서 모든 사람에 대해 그가 대통령이든 무관무직의 일개 개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경칭이나 비칭 등의 용어를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해야 할 의무나 권리가 없고 자격도 없다. 이름이란 자고로 조부나 부친 등의 존속이 많은 궁리 끝에 후손에게 지어 주는 것이다. 또 그 이름을 갖게 된 당사자도 대부분 그 이름을 평생 자신의 아이디(ID)로 지니게 된다.

이름에 관직이나 사사로운 단체 혹은 조직 등의 직책을 붙여 주는 것은 일종의 분장(扮裝)이다. 군더더기를 붙여 부르는 순간 당사자에 대해 편견 혹은 선입견을 갖게 한다. 작명가에게 돈까지 지불하면서 지었고 스스로 거리낌이 없이 사용해 온 이름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귀하’(貴下)가 웬 말이고 ‘여사’(女士)나 ‘영부인’(令夫人)은 또 무슨 따리인가.

“님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고 부르리까 (---) 그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것처럼 울어야만 됩니까 울어야만 됩니까”

이미자가 1963년에 불러 히트시킨 트로트, 김운하가 작사하고 나화랑이 작곡한 노래다. 연민의 정을 가지고 마음속으로만 사모하면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임이라 해도 좋고 당신이라 해도 좋을 그런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노래 가사를 조국 식으로 패러디하면 어떻게 될까.

“각하라 부르리까 귀하라고 부르리까”

정치권에서 벌이고 있는 ‘귀하’ 논쟁은 부질없는 짓이다. 도발(?)을 하는 쪽이나 그것을 맞받아 싸움을 벌이는 측 모두 ‘소인배’ 짓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정중한’ 표현이고 또 어떤 경우는 ‘정체불명’이 되는 ‘귀하’라는 호칭, 그저 그러려니 하면 될 일을 갖고 서로 삿대질이다. 햇볕정책을 쓰며 북한과 관계 개선을 도모했던 김대중을 끝없이 질타했던 인사 조 모가 있다. 그는 “귀하가 김정일과 합의한 6.15 선언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고 사실상 북한 정권의 남한적화 전략에 동조한 것이다. 귀하의 조국은 어디인가?” 귀하 귀하 했지만, DJ는 시비하지 않았다. 언론자유의 핵심이라는 이른바 ‘모욕할 권리’(The right to offend)를 인정했다.

정치인에게는 품격과 법도, 예의와 금도(襟度)가 있어야 한다.

‘귀하’라는 호칭은 정부나 공공기관의 민원 답신에서 보듯 실제 용례에서 충분히 예의를 갖춘 말이고 상대를 존대하는 경칭이기도 하다. ‘님’이면 어떻고 ‘당신’이면 어떤가. 말의 효과에 차이가 있을까? 혐오와 증오로는 관계만 악화시킬 뿐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물론 조국에게 윤석열을 존경하고 떠받들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큰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그의 심사가 아직 편치 않을 것이다. ‘귀하’라 부르는 소이(所以)가 있을 터. 듣는 사람 각자가 평가하면 될 일이지 그걸 걸고넘어질 건 없다. ‘꺼리’가 안된다는 뜻이다.

우리 정치권은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을 많이 한다. 괜한 시비를 일상으로 주고받는다, 상대 당에 대한 애정은 또 왜 그리 강하신지, 사사건건 간섭하고 훈수를 둔다. 정말 “너나 잘하세요”란 말이 절로 나온다. 당 대표 선출 축하 화환이 정쟁거리인가. 구상유취가 따로 없다.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편하지 못한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삿대질과 고성, 야유, 막말, 조롱이 아무렇지도 않게 연출되고 있고 또 그렇게 해야 의무를 다하는 것인 양, 의정활동을 잘하는 것인 양 우쭐대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국민을 대신해서 국정을 살피라는 ‘국민대표회의’ 회의장 모습이 실망을 넘어 절망스럽다.

국회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아무나 들어와서 서로를 ‘김씨’ ‘이씨’ ‘박씨’하면서 내키는 대로 목청을 높이는 곳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젊잖은 2인칭을 쓰자.

누구누구를 편들자는 것이 아니다. ‘귀하’나 ‘당신’, ‘그대’라는 말 사실 다 같은 뜻이다. ‘각하’라고 부르고 욕을 하면 무슨 소용인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제발 싸울 땐 싸우더라도 품위를 잃지 않기를 정치인들에게 바란다. ‘모냥 빠지는’ 짓들 그만하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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