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85.4%의 압도적 지지로 연임됐다. 최고위원 5명은 모두 이재명계 의원들로 채워졌다. 이 대표가 사실상 ‘공개지지’를 한 김민석 후보가 무난히 1위를 차지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향해 ‘살인자’라고 외친 전현희 후보는 2위, 이 대표 호위무사를 자처한 한준호 후보는 3위,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이라고 강성 발언한 김병주 후보는 4위, 과거 ‘친문 패권주의’를 질타한 이언주 후보는 5위를 차지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친명 체제’가 구축된 셈이다.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대표는 명실상부 야권 최대 대선 주자로 발돋움했다. 당 장악력은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대표회담을 제안했고, 한 대표가 이를 수락하면서 여야 대표가 오는 25일 국회에서 회담한다. 여야 대표 간 단독 회담은 윤석열 정부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구체적인 의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양당 대표 모두 ‘허심탄회한 대화’를 약속한 만큼 기대하는 바가 크다. 물론 지난 영수회담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합의문 도출 없이 각자 할 말만 하고 끝난 것처럼 실질적인 성과를 못 낸 채 이견만 확인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국민의 관심이 상당하고 두 대표의 정치력을 시험받는 무대인 만큼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 여야 대표 회담이 성공하려면 필수 조건이 있다. 무엇보다 ‘선민생 후정치이슈’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이 대표는 대표직 수락 연설에서 “멈춰 선 성장을 회복시키겠다”고 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먹사니즘’이 바로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합니다. 경제가 곧 민생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대표는 “국민의 삶에 보탬이 되는 정책이라면 모든 것을 열어 두고 정부·여당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한 대표도 “민생 과제에 대해 실질적 성과를 내는 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말 한 만큼 일단 정책 공감대는 형성됐다. 이 대표가 ‘먹사니즘’을 최우선 의제로 채택하고 한 대표도 ‘격차 해소’를 기치로 내건 만큼 충분히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는 채상병 특검,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 권익위 국장 사망과 같은 정치 이슈보다는 민생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 완화 및 상속세 개편, 연금 개혁안, 의정 갈등 등 경제·민생 의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만약 양당과 당정이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는 ‘채상병 특검법’을 둘러싸고 충돌하면 백약이 무효가 된다. 이 대표는 “한 대표도 진상 규명을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대표가 전당대회 당시 내건 ‘제3자 추천 특검안’까지 포함해 논의해 보자고 제안했다. 반면, 한 대표 ‘제보 공작’ 의혹을 특검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만큼 여야 대표 간 합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채상병 사건 수사를 늦출 수 없기에 한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제보 공작 의혹을 (수사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제3자 추천 방식’의 특검, 제보 공작 의혹까지 수사 대상에 넣는 대안을 제시한 만큼 한 대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한편,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지급 특별조치법)을 두고도 이견을 좁히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어려운 민생문제 중에서도 장기화하는 내수 부진을 타개할 방안에 대해 의논해야 한다”면서 “민주당은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이미 행사했고, 한 대표 역시 ‘일률적인 현금 살포’라며 거부감을 표했기 때문에 합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한 대표가 수평적 당정 관계의 자세로 취약 계층을 위한 선별적 지원에 합의할 경우, 여야 간 협치의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의혹을 담당한 국민권익위원회 국장 사망을 둘러싼 논쟁도 걸림돌이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국민권익위원회가 대통령 부인의 부패를 덮어주느라고 억울한 양심적 공직자를 죽음으로 내몬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망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고 유서나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권익위 국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 김 여사 비리를 봐주려다 벌어진 일로 몰아가면 판이 깨질 수 있다. 대표 회담을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로 몰고 가면 위험하다는 뜻이다.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대표는 상대방을 굴복시켜 승리하려는 ‘치킨 게임’(chicken game )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득을 주는 ‘사슴 잡기 게임’(stag-hunt game)을 해야 한다. 이 게임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 철학자인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기술한 이야기를 따서 만든 게임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 명의 사냥꾼은 각각 토끼나 사슴을 잡을 수 있다. 두 사람이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 원을 그리면서 포위망을 좁혀간다. 그러던 도중 한 사냥꾼의 눈앞에 토끼가 보인다. 그가 토끼를 잡기 위해 포위망에서 이탈해 토끼를 쫓아가는 순간 포위망이 열려 사슴은 그쪽으로 도망가게 된다. 포위망에서 이탈한 사냥꾼은 토끼를 확실히 잡아 이득을 챙길 수 있지만 사슴을 쫓던 다른 사냥꾼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요약하면, 한․이 두 대표가 협력하면 민생 경제 회복(사슴), 그리고 각 개인에게도 정치력 제고 등의 이득이 돌아올 수 있다. 반면,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해 눈앞의 이익(토끼)만을 좇으면 회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사슴 잡기 협력 게임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선 두 대표의 의지와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대표 회담을 위해선 정쟁 중단을 선언하고 여야 대표 회담을 정례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할 필요가 있다. 여야는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전세사기특별법을 합의 처리했다. 22대 국회에서 합의한 첫 민생 법안이다. 여야 대표 회담을 계기로 정치 이슈는 제쳐두고 ‘구하라법’, 간호사법, 국가기간전력확충망법 등 시급한 민생경제 현안 법안들을 조속히 합의 처리해 성과를 내길 고대한다.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