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 들어 일본 엔화의 움직임이 매우 극적이다. 우리나라 환율 역시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와 연동돼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본 엔화는 3월 이후 우리 나라와 차이를 크게 벌리며 가파른 절하 추세를 보이고 있다.

주춤하고 있지만 이번 주 엔·달러 환율은 1990년 4월 이후 34년만에 1달러 당 160엔 선을 넘어섰다. 과거보다 영향력은 줄었지만 여전히 일본은 우리나라와 수출 경합도가 높은 나라이고 지난해와 올해 일본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투자도 늘어난 상황이라 일본 엔화 환율에 대한 국내 투자자의 관심 역시 높다.

일본 엔화의 약세가 극적으로 나타날수록 투자자들의 시선은 일본은행을 향하고 있다. 일본 환율엔 미 연준 통화정책 영향도 스며들어 있지만, 시장 기대와 달리 미지근한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행의 행보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달러당 1370원 내외를 유지하고 있는 원화와 달리 일본 엔화가 160엔 넘어 급등한 것은 4월 일본은행 통화정책이 금리를 동결하고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한다는 원론적인 견지를 천명한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앞으로 일본 엔화 환율의 향배를 가늠하기 위해선 일본은행 통화정책에 대한 전망이 필요한데 금융시장의 기대나 압박에도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은 현재의 미지근한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섣불리 정상화 쪽으로 정책 전환이 이뤄질 때 그 후폭풍이 상당히 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신중한 것인데 2007년 있었던 통화정책의 트라우마는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시장에선 통상 ‘잃어버린 30년’으로 정리하지만, 이 시기에도 일본 경제는 등락을 거듭했다. 특히 2000년에서 2010년 사이는 중국 개방 영향으로 경제와 물가가 상승하고 제로금리나 양적 완화와 같은 비정상적인 정책의 정상화에 대한 압박이 거세졌다.

이런 배경으로 일본은행은 2006년 8월과 2007년 2월 0.2%pt씩 두 번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문제는 이 결정이 시기적으로 늦었고 다른 나라의 통화정책 결정과 어긋났다는 점이다.

미국은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단행할 시기에 이미 2004년 이후 진행한 금리인상을 마무리했고 일본의 두번째 금리 인상이 이루어진 2007년 상반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전조가 되는 부동산 시장의 부진이 이미 진행돼 위기에 대한 경고와 향후 금리 인하에 대한 언급이 나오던 시기였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며 2007년 7월부터 미국은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이렇게 엇갈린 통화정책은 환율에 그대로 전가된다. 1달러 당 120엔 대에서 움직이던 일본 엔화는 안전자산으로 추앙되며 2009년 80엔대 중반까지 가파르게 절상된다. 다른 나라 통화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대부분 통화가치가 크게 흔들린 것과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원화 역시 달러당 900원대 초반에서 1500원 넘는 수준까지 급격하게 절하된다. 이 시기 가파른 엔고는 일본 경제를 급격한 위축으로 내몰게 된다. 기업들의 수익이 크게 훼손됨에 따라 투자나 고용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소비가 다시 크게 위축됨으로써 일본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과 물가도 돌아간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경쟁력이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크게 훼손된 경쟁력은 우리나라와 같은 후발 주자들에게 기회로 작용했다. 우리나라가 IT부문에서 일본을 역전하고 자동차 등 주력 부문에서 일본과의 격차를 크게 줄인 것은 대부분 이 시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공교롭게도 지금 일본은행이 처한 상황이 지난 2006년과 2007년 초와 유사하다. 반등한 경기와 물가를 바탕으로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요구와 기대가 높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금리 인상을 마무리하고 금리 인하가 가시권에 들어온 미 연준과 정책 결정이 엇갈릴 위험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마무리 국면이다. 내년까지 미국 통화정책 결정은 금리를 유지하거나 인하하거나 사이의 결정이 될 전망이다. 반면, 일본은행 통화정책 결정은 유지하거나 정상화(긴축)하거나 사이의 결정이다. 최근 일본 경제 반등에 엔저가 크게 이바지하고 있고 당초 아베노믹스가 의도하는 것만큼 일본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음을 보면 엇갈린 통화정책 결정으로 2007년 이후의 악몽 재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이 지금의 미지근함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일본 엔화 환율 움직임의 키는 미 연준 통화정책이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미국 금리 인하 시점이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 엔화의 고환율도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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