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증권부 신수정 기자
금융증권부 신수정 기자

우리나라 금융소비자들은 길들여지고 있다. 개개인은 ‘똑똑한 금융소비자’, ‘은행원보다 아는 것 많은 현명한 고객’임을 자신한다. 하지만 실상은 이러한 탈을 쓴 것에 불과하다는 스스로 자각이 없을 뿐, 금융당국과 금융회사에 서서히 길들여진 상태다.

보험업권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인 ‘절판 마케팅’은 이미 은행업권에도 스며든 모양새다. 금융당국 주도 아래 은행권에 가계대출 관리 특명이 내려졌다.

하반기에 접어들며 은행은 너도나도 대출금리를 인상하기에 바빴다. 앞서 7~8월 5대 은행은 무려 20여 차례 이상 대출 금리를 인상해왔다. 이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대출받자는 분위기 속에 대출 수요자가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였다.

은행권 ‘이자장사’ 비판은 이어졌다. “금융당국이 이러한 판을 깔아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돌연 금리 인상 등 ‘가격적 정책’이 아닌 대출의 만기·한도를 제한하는 방식의 ‘비가격적 정책’을 은행에 요구했다.

이른바 ‘가계대출 관리방안’ 2탄이 시작된 셈이다. 주택 매매(매입‧매도)를 위한 대출 기회 자체를 박탈당할 처지에 놓이자 금융소비자들은 더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 

이달부턴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더불어 유주택자(1주택)와 다주택자(2주택 이상) 대상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취급 자체를 중단하는 은행들이 등장했다. 일간‧월간별 대출 한도를 제한하던 최종 대출 규제의 직전까지 도달했다. 

그 결과,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과 주담대 증가 폭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들 은행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725조3642억원으로 전월(7월) 대비 9조6259억원, 주담대(전세대출 포함) 잔액은 568조6616억원으로 전월(7월) 대비 8조9115억원 증가했다. 이는 2016년 1월 이후 시계열 중 최대 월간 증가 폭이었다. 

이런 상황에도 금융소비자들은 부동산‧대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꿀팁’으로 떠도는 대출 방법을 찾아 ‘정보의 바다(인터넷)’ 속을 떠돌고 있다. 대출 경로를 뒤쫓는 형국이다.

감독당국 규제로 근시일내 공급이 중단될 금융상품에 불나방같이 달려드는 금융소비자들. 이들 뒤에서 금융회사들은 단기간 폭증하는 수요와 예상치 못한 흥행으로 웃음을 지을 것이 자명하다. 보험업권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절판 마케팅’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금융당국과 은행은 이미 알고 있다. 금융소비자도 ‘학습’을 한다는 것을. 이미 2021년 부동산 가격 폭등 사태를 통해 가계대출의 단계적 규제와 그에 따른 시장 현상을 목격하고 경험한 당사자들이다. ‘이제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압박감이 소비자를 움직이고 행동하게 할 것이란 것도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익명의 은행권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금융당국이 은행권 규제에 나섰음에도 되레 널뛰는 대출시장에 대해 한마디했다. 

“어떻게 보면 금융소비자들의 인식도 (금융당국과 금융회사에)길들여지는 거죠.”라고. 정부는 물론, 금융회사도 알고 있다. 길들여진 금융소비자만 모르고 있을 뿐.

파이낸셜투데이 신수정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