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고객에 일괄 서명 및 활용 여부 ‘미안내’ 증거영상 입수

KB국민은행에서 홍콩 ELS에 가입해 손실을 본 일부 투자자들이 한 은행 지점을 찾아 신탁 계약서 작성 당시를 직원과 함께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 직원은 최초 동의 서명이 곧 일괄서명이며, 직원이 다른 동의 항목에 해당 서명을 가져와 사용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또 이를 고객에게 안내하지 않은 잘못도 함께 시인했다. 사진=제보자 제공
홍콩 ELS에 가입해 손실을 본 일부 투자자들이 한 은행 지점을 찾아 신탁 계약서 작성 당시를 직원과 함께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 직원은 최초 동의 서명이 곧 일괄서명이며, 직원이 다른 동의 항목에 해당 서명을 가져와 사용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또 이를 고객에게 안내하지 않은 잘못도 함께 시인했다. 사진=제보자 제공

국내 시중은행에서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편입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하면서 고객에게 일괄 서명을 받고, 활용 여부를 안내하지 않는 등 불완전판매를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5일 파이낸셜투데이는 한 시중은행 직원이 홍콩 ELS 투자 피해자의 항의에 따라 신규계약 진행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영상을 단독 입수했다.

영상에는 신탁 계약서 작성 초기 단계에서 고객에 최초 서명을 받은 후, 은행 직원이 이를 복사해 다른 동의 항목에 임의로 붙여넣어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인한 내용이 담겼다. 

통상 은행에서 신탁 가입 시 창구 직원은 계약서 작성 초반에 “성함 사인하세요”라고 안내한다. 하지만 이 최초 서명은 고객의 추가 개입이나 동의 없이도 서명하지 않은 항목에 활용할 수 있는 ‘일괄 서명’이다. 대부분 은행 직원은 이를 고객에게 따로 안내하지 않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의 직원 A씨도 “(서명 요청하면서) 일괄 서명이란 말 저도 안 한다”고 답했다. 투자 피해자가 “왜 일괄 서명을 얘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A씨는 “저도 사실 (일괄 서명이라고) 안 한다”며 “제가 잘못했다”고 시인했다. 

이어 A씨는 “‘홍콩 ELS 수익성 감소’, ‘교부 받았음’ 등 이런 안내 문구는 직접 따라 쓰셔야 해서 안내 드렸을 것”이라며 “(계약서) 밑에 안 써도 되는 부분은 (직원이) 클릭하면 자동으로 (서명이) 따라온다”고 설명했다.

이에 투자 피해자는 “여기(계약서)서 중요하지 않은 게 어디 있느냐. 왜 제 서명을 아무 곳에나 가져다 붙이시는 거냐. 언제 어떻게 붙이겠다고 얘길 해줘야지”라며 지적했다. 

이 같은 일괄서명 미안내는 해당 은행뿐 아니라 다른 경쟁 시중은행에서도 발견됐다. 홍콩 ELS 손실사태 피해자들이 모인 금융사기예방연대는 이날 오후 열리는 국회 세미나에서 해당 영상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금융사기예방연대 관계자는 “일괄서명을 복사해 붙여넣기하는 방식은 명확한 설명 없이 누락된 부분이며, 투자 피해자들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며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수 있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파이낸셜투데이는 이와 관련해 해당하는 한 시중은행에 입장을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파이낸셜투데이 신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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