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오 변호사(법무법인 서호)
유용오 변호사(법무법인 서호)

징계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전화나 연락을 받으면 일단 당황스럽습니다.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누구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지 되짚어 보기도 하는 등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조사받으러 오라고 한이상 그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도, 회피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고 내 자신에게 알려야 합니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면 현실과 감정 내지 인식에 차이가 생기고 급기야 자기부정으로 이어져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형사·징계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는 경우 의뢰인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것도 변호사 업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사실 형사처벌도 그렇고 징계처벌도 그렇지만 그 처벌을 받는다고 당장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며 절차를 충실히 진행하다보면 상황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처벌 받는 것에 순응하고 여유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하면 대충 그 이유를 알려 줍니다. 예를 들면, 부하에 대해 고함을 질러 갑질을 했다거나 여군에 대해 성희롱 발언을 했다거나 하는 정도를 안내해줍니다. 따라서 알려주는 단서를 기초로 사건을 재구성해 보아야 합니다. 추정되는 상황을 짚어보고 육하원칙에 따라서 종이에 쓰면서 최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없으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단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라는 방어 방법 밖에 쓸 수가 없습니다.

이 경우 피해자나 조사 담당자가 나의 기억에 없는 부분을 끼워 맞추는 진술이나 주장을 해도 나는 거기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억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의 주장을 반박할 수도 없고 조사 담당자의 추론에 대꾸할 수도 없이 막연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반복하다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피해자가 그렇게 이야기 했다면 그것이 맞을 겁니다’라고 진술하게 됩니다. 이러한 무기력한 진술은 그대로 진술조서에 남아 징계 심의시 징계위원들에게 제공됩니다. 관련된 진술을 읽는 징계위원들은 징계 혐의자가 진짜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잘못을 수긍하지 않고 부인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유한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는 기억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징계위원들도 이러한 경험을 했겠지만 정작 심의할 때에는 다들 색안경을 쓰고 심의에 임하기 때문에 징계 혐의자는 불리한 위치에 처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징계조사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경우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 조사 담당자가 알려준 단서를 바탕으로 명상을 통해 그 당시 상황을 기억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가급적 디테일하게 기억해내야 합니다.

결국은 디테일의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성관련 징계사건에서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살린 기억은 나중에 변경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진술의 번복은 나를 스스로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상담은 홈페이지 우측상단 기사제보나 이메일 [email protected]을 통해 하실 수 있습니다.

유용오 변호사는 군법무관 13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으며, 현재 법무법인 서호(chamlawyer.com)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보통군판사와 육군 제7군단 법무참모를 역임했습니다. 2008년부터 법무부장관 표창과 국방부장관 표창, 국무총리 표창을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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