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트론 매각·주식 담보 대출 가능성 높아
지주사 SK 지분 매각은 최후의 보루
SK㈜ 자사주 25% 보유…백기사 확보 가능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했다. 왼쪽은 법정 출석하는 최 회장, 오른쪽은 재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는 노 관장.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했다. 왼쪽은 법정 출석하는 최 회장, 오른쪽은 재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는 노 관장. 사진=연합뉴스

‘세기의 이혼 소송’으로 불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결과가 경영권 분쟁까지는 비화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 지분을 건드리지 않고도 1조3808억원이라는 재산분할액을 마련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어서다.

31일 금융투자업계·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 김옥곤 이동현)는 전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과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의 SK 지분이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의 성공적인 경영 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기에 노 관장도 그룹의 가치 상승에 기여한 점이 있다고 봤다. 이에 주식도 분할 대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SK그룹은 SK㈜를 통해 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스퀘어·SK E&S·SKC·SK네트웍스·SK에코플랜트 등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최 회장은 SK㈜ 지분 17.7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SK㈜ 주식 분할 시 최 회장의 그룹 장악력도 흔들릴 수 있다.

다만 재계 안팎에선 이번 이슈가 경영권 분쟁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대법원 선고까지 최소 2~3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최태원 회장이 배당금과 보유 부동산 매각, SK실트론 지분 매각 등의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에서 밝힌 최 회장의 보유 추정 재산은 3조9883억원이다. 최 회장의 SK그룹 상장 계열사 보유 지분 가치는 30일 종가 기준 약 2조555억원이다. 최 회장이 보유한 비상장사 SK실트론의 지분은 29.4%. 지난해 SK실트론 당기순이익 2340억원에 주가수익비율(PER) 20배를 적용해 산정한 기업가치를 바탕으로 본 지분 가치는 약 1조3800억원이다.

상장 계열사 지분 가치에 SK실트론 지분 가치를 더한 금액은 3조4355억원. 나머지 약 5000억원은 부동산과 현금 등으로 추정된다.

보유 부동산과 현금을 동원하더라도 부족한 금액은 약 1조원.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부족분을 총수익스와프(TRS) 형태로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매각과 주식 담보 대출을 통해 채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실트론 보유 지분은 SK그룹 경영권과 무관하다. 최 회장은 TRS 방식으로 SK실트론 지분 29.4%를 들고 있다. TRS는 지분 가치 변동에 따라 손익을 취하고, 금융회사에 수수료를 주는 형태다.

SK실트론은 국내 유일 웨이퍼(반도체 원판) 기업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4~5위권을 유지 중이다. 또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형 고객사와 안정적 공급 계약을 통해 시장 가치를 대폭 늘려왔다. 최 회장이 인수 당시 2535억원이던 지분 가치는 현재 7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배당으로 마련한 현금과 보유 부동산 매각, SK실트론 지분 매각으로도 부족할 경우 주식담보대출을 추가로 받을 가능성도 있다. 통상 주식담보대출은 보유한 주식 평가액의 40~70%를 대출받을 수 있다. SK㈜는 우량주인 만큼 최대 70%까지 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SK㈜ 보유 지분 매각에 나선다고 해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 적다. SK㈜가 보유한 자사주(약 25%)를 활용해 경영권 방어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SK그룹은 2003년 소버린 분쟁 때도 보유 중인 자사주 약 4.5%를 하나은행 등 채권은행에 매각해 백기사를 확보한 바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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