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에서 정관변경, 배당금 놓고 충돌 예상
이사회, 지분 구조 보면 어느 쪽도 완승 어려워
합의 통한 동업 청산만이 해법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023년 11월 15일 오후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니켈 제련소 기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023년 11월 15일 오후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니켈 제련소 기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계서열 228위인 영풍그룹의 동업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영풍그룹은 1949년 황해도 출신인 고(故) 장병희·최기호 두 창업주가 동업으로 시작해 3대째, 75년 동안 동업 관계가 이어져 왔다. 그런데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을 두고 충돌하고 있다. 오는 19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두 집안 간 표 대결이 예고돼 있다.

◆ 정관 개정·배당금 놓고 장씨·최씨 두 집안 대립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으로 대표되는 두 집안이 이번 주총에서 대립하고 있는 안건은 정관 변경과 배당금 문제다. 그러나 본질은 경영권 다툼이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19일 이사회를 열어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때 신주 배정 대상을 외국 합작법인으로 제한하는 정관을 삭제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국내 법인에도 제3자 배정이 가능하도록 고치겠다는 것이다.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영풍은 일방적인 정관 변경은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두 집안의 약속을 깨는 것이라며 주총에서의 표 대결을 예고했다.

양측의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정관 개정은 경영권 다툼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22년 최씨 집안의 3대인 최윤범 회장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질 당시만 해도 고려아연에 대한 장 씨 집안의 지분이 압도적이었다. 대략 30% 대 15%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최 회장은 한화 그룹 계열사인 한화H2에너지USA와 현대차 계열사인 HMG글로벌LLC를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10%에 가까운 우호지분을 확보했다. 그밖에도 자사주 교환을 통해 최 씨 집안의 지분은 우호지분을 포함해 33.2%로 늘었다. 물론 장 씨 가문도 손 놓고 있지 않았다. 그룹 전체가 나서서 고려아연 주식을 매입했다. 전체 지분은 32% 수준으로 늘어났지만 최 씨 집안에 역전된 것이다.

따라서 제3자 배정과 관련한 정관이 변경될 경우 최씨 집안이 더 손쉽게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통로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배당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씨 측에서는 고려아연 이사회를 통해 2023년 결산배당금을 1주당 5000원으로 확정했다. 중간 배당금 1만원을 합치면 현금 배당금은 1만5000원이다. 이것 역시 영풍 측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영풍 측은 2022년의 배당금 2만원보다 적다면서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장 씨 집안은 지난해 고려아연으로부터 받은 배당금 약 2000억원을 고려아연 지분 매입에 사용했다. 따라서 최 씨 집안으로서는 배당을 많이 주면 장 씨 집안이 고려아연 지분을 늘리는 실탄을 제공하는 것으로 우려하고 잇는 것으로 보인다.

◆ 고려아연 둘러싼 두 집안 갈등 주총 이후로도 계속될 듯

이번 사안에 대한 양측의 갈등은 주총에서 결정이 나겠지만, 그 게 끝이 아닐 공산이 크다. 최 씨 집안에서 본다면 이사회를 장악한데다가 우호지분을 합치면 장 씨 집안을 넘어서는 지분율을 확보한 상황에서 경영권을 내놓거나 나눠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옳은 판단일 것이다.

사정은 장 씨 집안도 마찬가지다. 고려아연은 그룹전체 매출에서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다. 또 고려아연으로부터 매년 수천억 원의 배당금은 그룹 전체의 부진을 만회하는 핵심요인이다. 여기에다가 아직은 영풍이 단일주주로서는 최대주주의 자리를 잃지 않고 있다. 최 씨 측에서 이끄는 데로 따라갈 입장은 아닌 것이다.

결국 두 집안의 갈등은 이번 주총 이후로도 이어질 것이고 이는 고려아연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영풍그룹이 홈페이지에 올린 '고려아연 주주여러분께 드리는 서신' 일부 갈무리. 사진=영풍그룹 홈페이지
영풍그룹이 홈페이지에 올린 '고려아연 주주여러분께 드리는 서신' 일부 갈무리. 사진=영풍그룹 홈페이지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동업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다. “동업은 형제끼리도 하지 말라”라든가 “친구와 헤어지고 싶다면 동업을 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 재계에도 동업의 성공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LG그룹이다. 구 씨와 허 씨 가문이 힘을 합쳐 그룹을 일군 것은 물론 특히 동업 관계를 청산할 때도 잡음 하나 없었다는 점에서 동업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만큼 동업은 청산할 때가 중요하다.

고려아연을 둘러싼 장 씨와 최 씨 두 집안도 동업을 청산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과 같은 갈등이 더 이어진다면 고려아연이라는 회사에게도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집안 간의 합의를 통해 주식을 교환하는 것도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최 씨 집안이 보유한 영풍 등의 지분과 장 씨 집안의 고려아연 지분을 교환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는 얘기다. 75년 동업의 끝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고(故) 장병희·최기호 두 창업주의 초심을 떠올린다면 지금이라도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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