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 상속 다툼에 개입 의심
검은 머리 외국인임을 내세워 과세당국과 소송 중
미공개정보 이용했다는 의혹도 제기

LG그룹 본사. 사진=연합뉴스
LG그룹 본사.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재벌 가운데 유교적 가풍이 가장 진하게 남아있는 곳이 LG그룹이다. 물론 그것 자체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가치판단 대상은 아니지만 ‘인화’라는 그룹 정신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게 사실이다. 장자상속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동생의 아들(구광모)을 양자로 들였고, 허씨(氏) 집안과 동업을 정리할 때는 물론 형제간 그룹을 분할 할 때도 그 흔한 잡음 한번 담장을 넘는 일이 없었다.

그런 LG가(家)에 온갖 잡음이 넘쳐나고 있다. 바로 고 구본무 선대 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BRV)대표 때문이다.

◆세 모녀 상속 다툼에서 이름을 알린 윤관 대표

윤 대표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고 구본무 회장의 배우자와 두 딸이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냈을 때였다. 양측이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큰딸 구연경 LG 복지재단 대표의 배우자인 윤 대표의 이름이 오르내린 것이다.

세 모녀가 구 회장 등을 상대로 상속 분할에 이의를 제기면서 몰래 녹음을 했고 이 장소에 윤 대표가 배석했던 것이 밝혀졌다. 또 고 구본무 회장의 사후에 동생인 구본능 회장이 유언장이 없다는 사실과 금고에 보관돼 있던 유지 메모의 내용 등을 알린 것도 윤 대표였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공식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세 모녀의 상속 다툼에 윤 대표가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재계에서 이를 믿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일부에선 상속 소송의 배후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며 과세당국에 소송 제기

윤 대표를 둘러싼 또 하나의 소송은 국세청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이다. 세무당국은 윤 대표를 상대로 조사를 벌여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배당소득 221억 원에 대한 종합소득세 신고를 빠뜨렸다고 판단해 123억7000여만 원의 세금을 고지했다. 이에 불복한 윤 대표는 조세심판원 심판을 거쳐 지난해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세 번째 변론기일까지 진행된 소송의 가장 큰 쟁점은 미국 시민권자인 윤 대표가 소득세법상 ‘국내 거주자’인지 여부다. 비록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1년에 절반, 183일 이상을 국내에 거주한 것으로 인정되면 거주자로 보고 종합소득세를 신고·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윤 대표는 국내 체류일수가 2012년 이후 7년 평균 180.6일이어서 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이 아니라 원천소득에 대해서만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무당국은 국내 체류일수를 관리한 것으로 보이며 여행 등 일시적 출국 기간을 합산하면 매년 최소 183일 이상 국내에 거주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75년생인 윤 대표는 중학교를 국내에서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경제와 경영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2005년 미국 영주권을 획득했고 2011년 미국시민권을 받았다. 그런데 미국시민권을 받기 전에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했던 것이 드러나면서 병역의무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의도한 것인지 여부는 윤 대표 본인만 알겠지만 ‘검은 머리 외국인(외국 국적의 한국인)’이라는 점을 내세워 병역의무를 비켜간 데 이어 납세의무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밖에도 윤 대표는 금전과 관련해 고 조남원 삼부토건 부회장 아들 조창연 씨와도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삼부토건이 보유하고 있던 ‘라마다르네상스호텔’을 매각하는 과정에 관여했다. 이 과정에서 조씨 측이 2억원을 대여해줬는데 “돌려주지 않는다”며 조씨 측이 윤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신약개발 회사 투자 전에 배우자 주식 취득 의혹

여기에 더해 이번에는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윤 대표의 배우자가 주식을 취득했고 이 과정에 윤 대표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내용은 이렇다.

윤 대표가 이끄는 BRV 캐피털매니지먼트가 작년 4월 코스닥에 상장돼있는 신약개발업체에 500억 원을 투자한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1만2000원대에 머물렀던 이 회사 주식은 투자유치 소식이 알려지자 당일 16% 정도 급등했고 이후 5만40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22일 종가 기준 주당 4만2800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이 가운데 윤 대표 배우자인 구연경 LG 복지재단 대표가 이 회사의 주식 3만주를 매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매수 시점이다. 만약 투자 발표 이전에 매입했다면 미공개정보를 이용했다는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주식을 LG 복지재단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범죄 성사 여부와 무관한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이 부분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사실이라면 LG가(家)에 큰 오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화(人和)’ 중시한 LG그룹 이미지에 타격 우려

고 구본무 회장은 허씨 가문과 동업을 정리하면서 GS그룹을 분할 할 때 LG정유(현 GS칼텍스)와 LG건설(현 GS건설) 등 그룹의 굵직한 계열사들을 떼줬다.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양보 없이는 다툼이 일어난다는 말로 주변의 반발을 무마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 형제 등 친인척과 사업을 분리해 LS, LX, LF, LIG 그룹 등으로 분리할 때도 분란은커녕 잡음 한번 없었다. 그만큼 인화를 중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맏사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각종 소송과 잡음을 보면 ‘인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행여 LG그룹의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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