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백자대호 본뜬 2018년 신사옥, 內 미술관
소장품 1만여점…1979년 선대회장부터 현 회장까지
학술재단도 문화·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사진=아모레퍼시픽그룹 그래픽=김영재
사진=아모레퍼시픽그룹 그래픽=김영재

기업이 문화·예술에 자원을 지원함으로써 국가 경쟁력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활동의 총칭인 메세나Mecenat. 그 어원은 로마 제국의 정치인이자 후원자였던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이케나스Gaius Cilnius Maecenas입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이 마이케나스에 빗대 기업과 문화·예술의 상호 보완적 협력 관계인 상생과 후원을 ‘FT브릿지’를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건축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예술은 건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상응이 선문답처럼 느껴진다면,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아모레퍼시픽그룹 신사옥은 그 질의의 해답일 수 있는 건물이겠다.

지난 2018년 새로 건물이 지어지면서 그룹의 정체성이 된 보물 제1441호 백자대호白磁大壺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Amorepacific Museum of Art의 주요 소장품이자 신사옥의 모티브다. 이 유물은 18세기 전반 경기도 광주 금사리에 위치한 조선 왕실 관요에서 제작됐으며, 부드러운 곡선과 바탕색이 둥근 보름달을 닮았다. 그래서 문화재청이 지정한 공식 명칭도 ‘백자 달항아리’다. 몸체의 위, 아래를 따로 제작해 이어 붙이는데, 그렇지만 대칭과 뛰어난 안정감이 돋보여 백자의 대표 격으로 불린다.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아모레퍼시픽 본사만의 특이성을 표현하려 백자대호를 택한 것이 우연이 아닌 이유다.

아모레퍼시픽그룹 본사 전경. 사진=아모레퍼시픽그룹
아모레퍼시픽그룹 본사 전경. 사진=아모레퍼시픽그룹

◆화장품 기업을 예술 요람으로…다채로운 기획전 펼쳐져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수직으로만 솟았거나 여러 동의 건물도 아니고, 단아하고 간결한 형태를 갖춘 절제와 순백의 이 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다. 크기는 약 1000평 정도다.

전 세계 미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기획전이 펼쳐지는 이곳의 뿌리는 고 장원粧源 서성환 선대회장이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한 태평양박물관이다. 1979년 개관한 이 박물관을 시작으로 2005년 디아모레뮤지움을 거쳐 2009년 지금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으로 이름이 굳어졌다.

동·서양 고미술과 현대 미술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인류 공통의 언어인 예술을 내세우는 시설이다. 건물 1층에는 미술관 로비와 뮤지엄 숍이 있고, 세계 각국 미술관과 박물관의 전시 도록을 열람할 수 있는 ap랩apLAP·Amorepacific Library of Art Project도 있어 호응도가 높다.

개막전인 ‘APMA, 더 비기닝The Beginning’전부터 그간 ‘라파엘 로자노헤머: 디시전 포레스트Rafael Lozano-Hemmer: Decision Forest’ ‘조선, 병풍의 나라’ ‘바바라 크루거: 포에버BARBARA KRUGER: FOREVER’ ‘메리 코스Mary Corse: 빛을 담은 회화’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조선, 병풍의 나라2’ ‘로렌스 위너: 언더 더 선LAWRENCE WEINER: UNDER THE SUN’ 등 여러 전시가 기획됐다.

기획전 ‘조선, 병풍의 나라’는 궁중과 민간에서 만들고 사용한 병풍의 종류와 특징을 조명한 전시다. 나아가 공간을 나누고, 분위기를 연출하며, 갖가지 의례와 행사에 사용되던 병풍이 갖는 가치와 조형미까지 살피는 기회였다. 지난 2018년 10월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이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곽분양행락도8폭병풍’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획전 ‘조선, 병풍의 나라’는 궁중과 민간에서 만들고 사용한 병풍의 종류와 특징을 조명한 전시다. 나아가 공간을 나누고, 분위기를 연출하며, 갖가지 의례와 행사에 사용되던 병풍이 갖는 가치와 조형미까지 살피는 기회였다. 지난 2018년 10월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이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곽분양행락도8폭병풍’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측은 이 중 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개인전과 병풍의 가치를 재발견한 ‘조선, 병풍의 나라’ 시리즈가 각 장르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다며, 다만 누적 관객수 등 수치상의 기록은 공유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2024년 상반기에는 작가 스티븐 해링턴의 ‘스테이 멜로STAY MELLO’전을 개최 중에 있다. 작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해 온 여러 사색이 담긴 이 전시는 그의 작업 세계를 조망하는 국내 최초의 기획전이다. 드로잉·조각·판화·회화와 더불어 나이키·이케아·크록스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제작된 디자인 작품까지 총 100여점을 오는 7월까지 소개한다.

◆역량 작가 발굴부터 세계적 수집가까지…문화 혁신 선도적 역할

현대 미술 프로젝트 ‘ap맵apmap·amorepacific museum of art project’은 역량 있는 국내 신진 작가를 발굴해 공공 미술 활성화와 현대 미술 융성에 공헌하려 2013년부터 전개됐다.

2022년 열린 ‘ap맵 리뷰review’는 지난 일곱 번의 전시를 결산하는 기획전이자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첫 한국 작가 단체전으로 꾸며져 환경, 인공지능AI 등 최신 이슈부터 자전적 경험까지 여러 주제를 다양한 장르로 선보였다. ‘ap맵’은 파트1과 파트2이 각각 4년간 아모레퍼시픽 연관 장소 및 제주도에서 개최됐고, 앞으로 파트3가 계속될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품 규모는 전체 1만여점으로 추정된다. 고미술 컬렉션은 초창기에는 장신구와 합, 다구를 포함함 공예품이 대개였으나, 이제는 선사 시대부터 근대에 제작된 것까지 전 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또 금속 및 목공예·도자기·복식·서화 등 장르도 다채롭게 구성돼 있다. 회사가 사업을 해외로 확장함에 따라 현대 미술도 현재는 아시아에 북미와 유럽까지 다양한 국가와 문화를 배경으로 컬렉션을 갖췄다.

현재 아모레퍼시픽그룹을 이끄는 서경배 대표이사 회장은 1997년 태평양 대표이사 취임 이래, ‘미’와 ‘건강’이라는 기업 가치를 중심으로 회사의 역량을 강화하고, 아모레퍼시픽을 대한민국 대표 뷰티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아모레퍼시픽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가치가 고객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지난 2016년 9월 서 회장이 서경배과학재단 설립 기자간담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재 아모레퍼시픽그룹을 이끄는 서경배 대표이사 회장은 1997년 태평양 대표이사 취임 이래, ‘미’와 ‘건강’이라는 기업 가치를 중심으로 회사의 역량을 강화하고, 아모레퍼시픽을 대한민국 대표 뷰티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아모레퍼시픽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가치가 고객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지난 2016년 9월 서 회장이 서경배과학재단 설립 기자간담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른 기업과 다르게, 미술관이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 회장 직속 조직으로 소속된 것도 특징이다. 창업주의 차남이자 미술에 조예가 깊은 서 회장은 만일 기업인이 안 됐다면 미술평론가가 됐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그럼에도 미술관 운영에 관여하지 않고 소장품 구입도 내·외부 추천과 회의로 이뤄진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서 회장은 미술 전문지 아트뉴스가 설정한 그해 세계 200대 미술품 수집가에 이름을 올린 2명의 한국인 중 하나였다. 그가 이 명단에 포함된 것은 2015년, 2016년, 2022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우리나라와 세계의 미술 문화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며 “우리의 미술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해외 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소개하며 연구 및 지원하는 일련의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학술연구재단도 메세나 활동 합류 “대중에게 더 가까이”

1973년 설립된 아모레퍼시픽재단도 있다. 학술연구재단인 이 재단은 인재 육성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사업 및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 공존하는 역사적이며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미에 주목한 ‘아시아의 미’ 프로젝트 및 그 연구 성과를 대중과 나누고자 2012년 시작된 전문가 강좌 등의 지원을 통해 학술 연구의 저변을 활성화하는 의의가 있는 곳이다. 이렇듯 연구 지원으로써 여러 성과를 축적해 오고 있는 이곳은 기타 연구까지 지금껏 약 80권의 책 출간도 뒷받침했다.

지난해에는 재단 설립 50주년을 맞아 몇몇 문화·예술 기획도 진행했다. 세종문화회관과의 공공 예술 프로젝트인 ‘희망의 빛 1332’는 수거된 화장품 공병 1332개와 발광다이오드LED로 만든 높이 8.3미터m의 대형 트리다. 관객들이 손을 맞잡는 동작을 인식, 빛을 점등하는 관객 참여형 미디어 아트전이었다. 

‘물의 자리, 돌 풀 바람’은 물이 지닌 유동적인 속성을 바탕으로 돌, 풀, 바람을 연결하고 더욱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의 아모레퍼시픽재단 설립 50주년 기념전이다. 다양한 감각을 토대로 상호 작용하는 인터랙티브 전시로 꾸며졌으며, 특히 센서 기술을 도입해 움직임이나 접촉에 따라 작품의 시청각적 요소가 동시 반응하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사진=아모레퍼시픽재단
‘물의 자리, 돌 풀 바람’은 물이 지닌 유동적인 속성을 바탕으로 돌, 풀, 바람을 연결하고 더욱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의 아모레퍼시픽재단 설립 50주년 기념전이다. 다양한 감각을 토대로 상호 작용하는 인터랙티브 전시로 꾸며졌으며, 특히 센서 기술을 도입해 움직임이나 접촉에 따라 작품의 시청각적 요소가 동시 반응하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사진=아모레퍼시픽재단

아모레퍼시픽과 아모레퍼시픽재단의 협업도 활발하다. 지난해 10월 열린 ‘물의 자리, 돌 풀 바람’전은 재단 연구 사업 ‘아시아의 미’를 통해 출판된 24권의 총서 중 ‘물과 아시아의 미’ ‘풍경으로 본 동아시아 정원의 미’ ‘산수화가 만든 세계’에서 소재를 일부 착안해 전시를 기획했다. 발간 도서의 발췌뿐 아니라 아모레퍼시픽 연구소 미생물 자료 이미지, 제주 오설록 차밭에서 직접 수집한 풍경 및 소리로 작품을 완성했다.

올해에는 서울문화재단과 합심해 노들섬에서 서울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과거 아모레퍼시픽 크리에이티브센터와 열었던 ‘유행화장’전도 보다 진일보한 모습으로 노들섬서 진행된다. 또한 이 기획과 별개로 아모레퍼시픽이 있는 용산구 구민과 모든 방문객이 대상인 프로젝트를 용산구청과 함께 이어 나갈 예정이다.

아모레퍼시픽재단 관계자는 “그동안 학술계에 쌓아 온 성과를 기반으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이어 가고 있다. 그 문화·예술로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고 전했다. 

아름다움과 건강으로 인류에 공헌하겠다는 창업 정신과 ‘사람을 아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소명으로 아모레퍼시픽은 앞으로도 한국의 문화·예술 후원을 지속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문화와 감성을 나눌 수 있게 노력을 지속할 전망이다. 모두가 그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한국메세나협회는 아모레퍼시픽의 메세나 활동에 관해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 목표인, 문화·예술을 매개로 교감하는 기업”이라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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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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