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회사에 일감 몰아주면서 초과 이익 보장
역합병 과정에서 아들 회사 지분 확대
합병 통한 편법 승계 차단 시급

삼표.  사진=연합뉴스
삼표. 사진=연합뉴스

일감 몰아주기로 총수 자녀 회사를 키워준 뒤 합병을 통해 경영권을 승계하는 편법이 변칙 상속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다. 작년 호반건설에 이어 이번에는 삼표그룹이다. 비록 일감 몰아주기가 공정위에 적발돼 100억 원이 넘는 과징금이 부과됐지만, 상속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싸게 치이는 것이라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8일 삼표산업이 총수 2세의 계열사를 밀어준 혐의로 116억2000만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하고 삼표산업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조사 내용을 보면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다. 삼표그룹의 계열사 가운데 에스피네이처라는 회사가 있다. 레미콘을 제조할 때 원가를 낮추기 위해 시멘트를 대체하는 물질인 분체를 생산하는 업체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대현 부회장이 71.9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삼표산업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 동안 에스피네이처로부터 분체 전량을 시세보다 4% 비싼 가격에 구입했다. 삼표산업은 연말에 에스피네이처가 다른 곳에 판매한 평균 공급단가보다 4% 이상 비싸면 그 초과분을 돌려받는 방법으로 4%의 초과 이익을 보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해서 4년 동안 얻은 초과 이익이 대략 74억9600만원이라는 게 공정위 계산이다. 이에 따라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리고 법인을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 유상증자, 역합병을 통해 아들의 그룹 지배력 증대

문제는 초과 이익에 한정되지 않는다. 삼표산업이 이렇게 초과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에스피네이처는 국내 분체 시장에서 점유율 1위 지위를 굳힐 수 있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정 부회장에게 311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에스피네이처가 삼표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에스피네이처는 지난 3월 삼표산업에 600억원 규모의 유상 신주를 취득했다. 이로써 삼표산업에 대한 에스피네이처의 지분은 1.74%에서 15.47%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7월 삼표산업은 지주사 삼표를 흡수 합병했다. 역합병인 셈이다. 여기에서 묘수가 드러났다. 삼표는 합병 전 삼표산업 주식의 96.25%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주식이 합병 이후 삼표산업의 자사주로 탈바꿈하게 된다. 자사주 지분율이 44.73%에 달하게 된 것이다.

역합병 이후 삼표산업의 지분율을 보면 정도원 회장의 지분이 33.15%이다. 역합병 전 지주사 삼표에 대한 지분율 65.99%와 비교하면 지배력이 절반 정도로 떨어지게 됐지만, 여전히 최대주주다. 이에 비해 정 부회장의 지분율은 5.22%로 아버지 정 회장과는 한참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에스피네이처의 지분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에스피네이처의 삼표산업에 대한 지분율은 32.98%에 달한다. 에스피네이처와 자신의 지분을 합치면 아버지 정 회장의 지분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정도원 회장의 지분 없이도 삼표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들 정 부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에스피네이처에 일감을 몰아줘 돈을 벌게 하고 이 돈으로 에스피네이처의 삼표산업에 대한 지분을 늘린 뒤, 지주사인 삼표를 역으로 흡수합병했다. 이 과정에서 의결권 없는 자사주가 늘어나 승계의 틀이 마련된 것이다.

◆ 호반건설 이후 합병 등을 동원한 편법 승계 관심을 끄는 듯

일감 몰아주기로 아들 회사를 키우고 그 회사가 그룹 본체를 합병해 편법으로 승계의 그림을 짜는 꼼수는 이미 작년에 호반건설에서 문제가 됐다. 호반건설은 벌떼 입찰로 낙찰받은 택지를 아들 회사에 몰아주고 그 이익을 바탕으로 아들 회사의 덩치를 키운 뒤 아버지 회사를 합병함으로써 승계하는 편법의 끝판왕을 보여 준 것이다. 호반건설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을 때 재계에서는 건설 경기 호황이라는 천운(天運)도 작용한 것이라며 얄밉기는 하지만 어쩌겠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삼표그룹의 경우는 다르다. 아들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서 키우고, 주요 계열사의 유상증자를 통해 입지를 넓힌 뒤, 지주사와 합병하는 큰 그림을 오래전부터 그려온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삼표그룹이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정도원 회장의 지분을 처리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또 자사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관건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가 됐건 정직하게 상속세를 무는 것보다는 세금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삼표산업에 대한 제재를 내리면서 정 회장이나 정 부회장이 범행에 가담했음을 입증할 증거가 없어서 법인인 삼표산업만 검찰에 고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일감 몰아주기나 편법 승계의 큰 그림이 총수의 개입 없이 가능할 수 있을까? 공정위가 소극적인 대처에 그친다면 일감 몰아주기와 합병을 동원한 편법 승계가 또 등장할 것이다. 왜냐 하면 증여세나 상속세를 무는 것보다는 공정위 과징금이 싸게 치이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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