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이 끝났을 때, 우리는 아주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 두 정상이 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매우 생소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소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째 과거 외국의 정상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런 기자회견을 한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 기자회견을 하려면 기자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에 기자가 있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언론 환경 역시, 북한보다는 조금 나은 상태지만, 결코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들 두 정상이 기자회견이라는 ‘색다른’ 방식을 시도한 이유는, 아마도 러시아와 북한이 맺은 조약을 강조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푸틴과 김정은의 정상회담 직전, 우리 정부는 러시아 정부에게 ‘선을 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도됐었다. 아마도 우리 정부는 해당 정상회담에서 ‘상당 수준’의 ‘조항’이 포함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회담 직후에 있었던 공동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것만 보면, 이런 우리 정부의 우려는 기우였던 것 같았다. 푸틴 대통령은 “오늘 서명한 포괄적 동반자 협정은 무엇보다도 협정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런 언급이 사실이라면, 과거 1961년 북한과 소련이 맺은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조·소 동맹조약)’보다 이번 조약의 ‘협력 수준’이 높다고는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조소 동맹조약’에서는 ‘(침략을 당할 시) 즉시적인 군사 개입’을 명문화했었기 때문이다. 즉, 이번 공동 회견 당시 푸틴의 언급에서, ‘즉시적인’이라는 단어도 없고, ‘군사 지원’이라는 단어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번 정상회담에서 체결된 조약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이었기 때문에, 1961년 협정보다는 강도 높은 조항이 포함되기는 힘들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은, 이론적으로 ‘포괄적 전략 동맹 관계’보다는 낮은 수준의 협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의 경우,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과 같은 조항을 포함하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자회견 당시에 발표된 조약에 언급된 ‘상호 지원’이라는 단어를 확대 해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러시아와 북한 간의 조약 전문을 발표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조약 전문에 따르면, 조약 4조에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런 조선중앙통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수준이 아니라, ‘동맹’ 수준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를 어떻게든 부풀리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과거부터 외교 성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해, 북한이 언급한 조약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러시아가 조약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천명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하지만 아직까지 러시아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고, 우리 정부의 강경한 입장 천명만이 있을 뿐이다. 만일 북한의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동북아 유일의 ‘공식적 핵보유국’인 중국은 매우 불편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의 핵보유국’ 북한이 ‘핵 강대국’ 러시아와 이런 식의 관계를 맺을 경우,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매우 축소될 수밖에 없고, 동북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만일 북한과 러시아 간에 ‘자동 군사 개입’을 명문화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자위 조치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핵 관련’ 세 가지 옵션 중 하나를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한가지는 자체 핵무장이고, 다른 것은, 미국의 전술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다. 세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미국과 나토식 핵 공유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우리 자체 핵무장은 여러 난관을 극복해야 가능하지만, 미국의 전술 핵무기 재배치는 미국과의 관계에 의해 현실화할 수 있는 사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올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 결과다. 만일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를 가정하면, 미국의 전술핵 자산의 대한민국의 재배치는 요원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될 것이다. 트럼프가 우리의 자체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반대로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우리 자체의 핵무장은 용인하지 않겠지만, 미국의 전술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는 가능할 수도 있다. 나토식 핵 공유 협정은,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지금 한반도는 다시금 큰 격랑에 휩싸인 것 같다. 우리 자신의 힘만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단순한 명제를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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