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민의힘에서는 지도 체제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국민의힘의 경우, 2005년 이전까지는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다가 2005년부터 9인의 최고위원이 당을 이끄는 집단지도체제로 바꾼 바 있다. 그런데 2015년,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간의 계파 갈등이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등장하자, 지도 체제를 다시금 단일지도체제로 전환했다. 그 이후 국민의힘은 계속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했었는데, 이번에 지도 체제 문제가 다시금 논란의 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지도 체제 논란은 매우 특징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총선이 국민의힘 참패로 끝났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참패한 정당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특이한 징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참패하면 당 구성원 대부분이 책임에 통감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상당 기간 ‘조용’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총선 참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음에도, 이들에 대한 책임을 묻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책임을 지는 행동을 보였는데도, 책임을 지라는 소리를 하니 특이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총선 백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21대 총선 백서 특위 부위원장으로 백서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총선 백서 작업은 지금보다는 늦은 시기에 시작했었다. 백서를 쓰는 데 가장 중요한 작업은, 전국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현지의 지역 언론인과 해당 지역의 낙선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당시는 마침 여름 방학 기간이었기에, 필자 역시 각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여기서 ‘여름 방학’이라는 점이 중요한데, 이는 당시 백서 작업이 7월과 8월에 이루어졌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5월부터 백서 TF가 꾸려졌으니, 솔직히 약간은 놀랐다. 4월 총선이 끝나자마자 백서를 쓰겠다고 달려드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최소한 총선 이후 두세 달은 지나야, 낙선자들도 마음을 추스르고 객관적으로 패인(敗因)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서 백서 작업을 시작하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말이다. 또한 당 지도부에 대한 면담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만일 반드시 면담을 해야 한다면 공관위원장 정도가 적합하다.

이번 총선에서 이른바 ‘중진 재배치’는 완전한 실패로 끝났는데,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실패했음에도 다시금 중진 재배치를 밀어붙인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정도는 공권위원장에게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의도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절대 무리한 중진 재배치를 하면 안 됨을 백서에 명확하게 밝히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히려 낙선자들과 지역 언론인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녹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현장의 목소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다음번 총선 현장에서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전략의 실패’ 혹은 ‘대통령’을 참패의 원인으로 꼽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대통령이나 비대위원장과의 면담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패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백서의 진정한 목적이지, 책임 추궁은 백서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특정인의 입장을 듣겠다고 주장하니, 백서 작성의 목적이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체제 논란마저 불거지고 있으니, 이 역시 특정인을 의식한 논란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인을 겨냥한다는 소리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국민의힘을 위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참패했으면 모두가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특정인을 겨냥한다는 소리가 자꾸 등장하면, 참패한 정당이 권력 투쟁에만 몰두한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힘에 등을 돌리는 유권자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도 바닥인데, 여당 지지율마저 하락한다면 정국이 돌아갈 수 없다. 이점을 여당 구성원들은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잡음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권력 쟁취의 과정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 나갔다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이제 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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