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늑장 대응에 ’중국산 벤츠‘ 논란
2015년 아우디 ’디젤 게이트‘, 2018년 BMW 화재 떠올라
벤츠 수입차 1위 탈환은 어려울 듯

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남 소나타’로 불리며 수입차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벤츠에 제동이 걸렸다. 인천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사고 때문이다. 사고 이후 배터리 제조사를 자발적으로 공개하라는 정부의 요구에도 신속하지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뒤늦게 공개했지만, 결과적으로 겉만 독일 차량이지 실제로는 중국 차량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작년에 BMW에 내줬던 수입차 1위 자리를 재탈환하는 것은 이제 실현 불가능하고, 어쩌면 전기차에 대한 불신이 내연기관차량으로 번져 수입차 시장에서 추락할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 벤츠, 배터리 제조사 늑장 공개로 비난 키워

인천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벤츠의 대응 태도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사고 이후 정부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완성차 업체에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현대기아차가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고 수입차 가운데서는 BMW가 가장 먼저 홈페이지에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고 나서는 등 수입차 업체들도 동참했다.

그러나 사고의 주인공인 벤츠는 처음에는 영업비밀이라며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텼다. 이후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자 등 떠밀려 뒤늦게 공개했다.

◆ 벤츠, 16개 차종 가운데 13개 차종이 중국산 배터리

막상 벤츠가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자 소비자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벤츠의 16개 차종 가운데 벤츠 EQA 250(연식 : 23∼25), 벤츠 EQB 300 4MATIC(연식 : 22∼25)에 SK온 배터리가, 그리고 벤츠 EQC 400 4MATIC(연식 : 20∼21)에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장착돼 있을 뿐 나머지 13개 차종에는 모두 중국산 배터리가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5개 차종에서는 화재 사고 차량에 장착된 것과 같은 중국 파라시스 제품이 탑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BMW는 전기차 7종 가운데 4개 종에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됐고 2종은 중국의 CATL, 1종은 삼성SDI와 CATL 배터리가 같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국내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 모델 14종에 삼성SDI 또는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장착됐다고 공개했다.

◆ 신뢰도 높지 않은 중국산 배터리 사용 드러나

벤츠는 ‘비싸기 때문에 믿고 구입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가 마케팅이 먹히는 제품이었다. 그런데 정작 전기 자동차에서 원가 비중이 가장 큰 배터리를 중국산으로 채택했다는 것은 소비자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중국 1위인 CATL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파라시스 제품이 장착됐다는 사실은 소비자의 불신을 부추겼다. 2009년 설립된 파라시스는 지난해 기준 매출과 출하량에서 세계 10위 권의 배터리 제조사다. 삼원계 배터리의 특성상 제조과정의 노하우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비싼 벤츠 자동차에 업력이 짧은 파라시스 제품이 탑재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특히 파라시스 배터리는 2013년 ‘특정 환경에서 배터리 화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3만1963대가 리콜된 전례가 드러나 소비자들의 분노를 키웠다.

◆ 아우디 ’디젤 게이트‘, BMW 화재 늑장 리콜 사례 명심해야

서울 서초동의 수입차 대리점 밀집 거리에 수입차를 실은 트럭이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동의 수입차 대리점 밀집 거리에 수입차를 실은 트럭이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입차는 철저히 브랜드 이미지가 판매를 좌우한다. 자칫 위기를 대처하지 못하면 속절없이 추락한다는 사실은 아우디의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아우디는 2010년대 초반만 해도 BMW, 벤츠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수입 자동차에 속했다. 2012년 수입차 판매통계를 보면 BMW 2만8000대, 벤츠 2만300대에 이어 1만5000대로 3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독일차 3형제‘, ’독3‘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작년 판매량을 보면 BMW 7만7000대, 벤츠 7만6000대인데 비해 아우디는 1만7000대에 불과하다. 수입차 3위의 자리는 지키고 있지만, 그 위상이 초라할 정도로 찌그러든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4월에는 방배서비스센터가 문을 닫는 등 올해에만 전국에서 서비스센터 3곳이 줄어들었다.

아우디가 수입차 시장에서 이렇게 추락한 것은 2016년에 있었던 ’디젤 게이트‘가 발단이 됐다. 배출가스 조작을 이유로 한국 정부가 인증을 취소해 판매가 중단된 것에 타격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배상금과 부당 표시 등의 문제로 법정 공방을 펼치면서 부도덕하다는 이미지가 더 큰 치명타를 안겼다. 이러한 이미지 타격은 판매 부진으로 이어졌다. 2017년 11월 국내 판매를 재개했지만, 과거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디젤 케이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우디의 작년 해외판매량은 190만대로, BMW 225만대, 벤츠 200만대와 큰 차이가 없었다. 유독 한국시장에서 아우디의 추락은 한국에서 ’디젤 게이트‘에 잘못 대응했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BMW도 위기가 있었다. 2016년 이후 BMW 5시리즈와 3시리즈 디젤 차량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늑장 대처에 나서서 2018년 7월 리콜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결함을 은폐, 축소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일부 지하 주차장에서는 BMW 차량의 출입을 금지하는 사례도 빚어졌다.

그 결과 2018년 BMW 판매량은 전년 대비 15% 가량 줄었고, 이후 4년 동안 벤츠에 수입차 시장 1위 자리를 넘겨주는 수모를 겪었다.

◆ ’중국산 벤츠‘ 이미지 판매에 타격 줄 듯

벤츠는 올해 수입차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다시 탈환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5월까지 판매량을 보면 BMW 7만7395대, 벤츠 7만6697대로 근소한 차이로 2위에 머물러 탈환 가능성도 높게 점쳐졌다. 이번 인천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벤츠가 올해 1위 탈환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예상이다.

특히 중국산에 대한 반감이 큰 한국시장에서 ’벤츠는 중국산‘이라는 이미지는 한동안 벗어나기 어려운 굴레가 될 것이다. 또 이런 이미지가 전기차에 그치지 않고 내연기관 차량에까지 덧씌워지면 벤츠의 위상 추락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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