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공연 성황리 종연
9~10일 세종, 16~17일 대구에서

연극 ‘햄릿’ 스틸컷. 사진=국립극단
연극 ‘햄릿’ 스틸컷. 사진=국립극단

《리뷰》

선왕의 갑작스러운 서거 후 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사건은 합리적으로 일단락된다. 그 결과 숙부 클로디어스김수현 분가 서열 1위 공주 햄릿이봉련 분을 제치고 대신 왕위를 계승하며, 더욱이 어머니인 왕비 거트루드성여진 분는 그와 재혼해 다시 왕비가 된다. 장례식과 결혼식의 교차에 혼란에 빠진 햄릿. 이에 햄릿은 의심을 품고 그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려 앞장서는데⋯.

부새롬, 정진새 / 영국-윌리엄 셰익스피어 / 135분 /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에메랄드빛 조명이 무대를 비추고, 저승 가는 길고 얄따란 문이 열리며, 등장인물이 그 출구로 유유히 퇴장한다. 생명의 근원인 물이 이번만큼은 사자死者가 거니는 통로가 된 셈이다. 지난달 29일 종연한 국립극단 ‘햄릿’은 무대 중앙에 웅덩이를 설치, 이것을 사람이 죽어서 만나는 큰 내 ‘삼도천’처럼 묘사한다. 고전을 존경이 아닌 사랑과 열정으로 강간해야 한다는 폴란드 연극 평론가 얀 코트의 말처럼, 2024 ‘햄릿’은 이같은 현대적 변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기의 스토리텔러’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은 1599년부터 1601년 사이 집필된 복수復讐의 희곡. 이번 작에서는 남성 역할의 대명사 햄릿이 그 반대인 여성이 되는 젠더 밴딩을 거쳤다. 다만 햄릿이 여성이 됐어도, 그 성별이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중요 요소가 아니다. 각색에서는 정치력을 상실한 햄릿의 인간 혐오 및 무력감에 보다 비중이 실린다. 아버지의 죽음보다 오히려 왕위 계승이 무마된 것에 더 분개하는 햄릿의 모습이 강조된다.

논리적이고 치밀한 정치극으로 거듭났고, 이 중 햄릿이 왕이 되려는 이유는 어떤 왕이 되기 위함보다 그가 권력을 잡는 일이 곧 정의의 구현이라서다. 그 누구도 억울하게 안 죽는 국가를 만들기 위함이며, 이는 정진새 작가의 언급처럼 “미래의 햄릿”을 상징한다. 여성 혐오성 장면을 삭제한 것도 눈에 띈다. 그렇지만 이것을 지금의 눈으로만 판단한 점은 논란 여지가 있다.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 프로그램을 시작한 미국의 제작자 겸 연출자 조셉 팝은 “햄릿을 연기하기 전에는 배우를 졸업한 게 아니다”는 말로 이 역할의 무게감을 강조했다. 일종의 통과의례나 궁극의 목표, 큰 도전이자 성취로 해석된다. 2001년 배우 김석훈, 2007년 서상원에 이어 이봉련이 국립극단 역대 3번째 햄릿이 됐다.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며 ‘봉련 햄릿’이라는 애칭을 얻은 이봉련은 그가 햄릿 역을 맡은 것에 관해 이를 천운이라고 밝혔다. “복수극에 객석이 즐겁고 들끓기를 바란다”는 것이 그의 소원이란다.

2019년 ‘국립극단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 설문 조사 결과 그중 2위. 하지만 극장 화재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2020년 공연이 취소됐고, 2021년, 2023년 각각 온라인 극장 상연과 오프라인 스크린 상영이 진행됐다. 오프라인 초연인 서울공연이 지난달 29일까지 3주간 열렸다. 이제 세종, 대구도 그 복수로 들끓을 차례다. 세종공연은 9일부터 10일까지 세종예술의전당에서, 대구공연은 16~17일까지 수성아트피아 대극장서 열린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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