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파리 올림픽 불과 9개월 앞두고 사격 후원 종료
눈부신 성과에도 그동안 후원은 관심에서 벗어나
표류하는 사격연맹의 적임자는 한화그룹?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한화그룹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한화그룹

우리 국민은 요즘 누구 할 것 없이 폭염에 지치고, 정치권의 끝없는 정쟁에 짜증 나 있다. 그런 와중에 파리에서 들려오는 올림픽 낭보는 한 가닥 희망이 되고 있다. 더불어 특정 종목을 후원해온 재벌 그룹들도 덩달아 칭찬을 받으면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양궁을 후원해온 현대차그룹이다. 지난 1985년부터 40년 동안 최장기간 후원했다는 사실, 또 슈팅 로봇을 비롯한 첨단 기술로 훈련을 도왔다는 것, 그리고 정의선 회장이 파리에 미리 도착해 우리 양궁 선수들의 준비상황을 챙기고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했다는 것 등등.. 언론들은 이런 사실을 들춰내며 침이 마르도록 현대차그룹 칭찬에 앞장서고 있다.

물론 현대차그룹의 양궁 후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만 이런 분위기에 아뿔싸 하며 후회할 곳이 있다. 한화그룹 얘기다.

◆ 한화그룹 20여 년 동안 사격계 전폭 지원

양궁에 현대차그룹이 있다면 이번 올림픽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둔 사격에는 한화그룹이 있었다.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라는 과거형을 사용하는 것은 한화그룹이 지금은 사격 후원에서 손을 뗐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은 사격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2001년 한화갤러리아 사격단을 만들었고 2002년 대한사격연맹 회장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사격을 후원했다.

2008년부터는 국내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하나인 매년 한화회장배 전국사격대회를 개최했다. 또 국제 사격경기 규정에 맞춰 전자 표적으로 경기를 치르도록 지원했고 겨울에는 선수단이 따뜻한 곳에서 전지훈련을 하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위해 한화그룹이 2002년 이후 20여 년 동안 사격 발전기금으로 낸 돈이 200억원을 넘는다.

2018 한화회장배 전국사격대회. 사진=한화그룹
2018 한화회장배 전국사격대회. 사진=한화그룹

이러한 후원의 결실은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대회 성적으로 나타났다. 올림픽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속 금메달을 획득한 ‘사격 황제’ 진종오 선수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밖에도 런던 올림픽의 금메달 김장미 선수, 도쿄 올림픽 김민정 선수 등도 국민 기억에 또렷이 각인돼 있다.

한국 사격이 역대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은 금메달 7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개다. 그런데 한화그룹이 회장사로 후원을 시작한 이후에 5개의 금메달과 7개의 은메달, 1개의 동메달이 나왔다. 그만큼 한화그룹의 후원이 큰 힘이 됐다는 얘기다.

◆ 한화그룹, 작년 11월 사격계와의 이별 선언

그런데 사격에 대한 한화그룹의 열정에 이상이 감지된 것은 2017년 이후다. 2017년 갤러리아 사격단을 해체하면서 그룹 안팎에서 손을 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작년 11월 사격과의 이별을 통보했다. 한화갤러리아 대표 출신으로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맡고 있던 김은수 회장이 작년 11월 9일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당시 한화그룹은 20년 넘게 사격연맹 회장사로 후원해왔고 사격 발전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면서 새로운 기업이나 개인에게 기회를 열어줘서 사격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애초 도쿄 올림픽이 지나면 회장사를 그만둘 생각이었으나 도쿄 올림픽과 항저우 아시안 게임이 1년씩 연기되는 바람에 결정 시기가 늦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우여곡절 끝에 후임 신명주 회장 뽑았지만, 임금 체불 논란으로 사의 표명

국내 사격계의 기둥이자 ‘키다리 아저씨’였던 한화그룹의 부재는 큰 혼란을 가져왔다. 반년이 넘도록 후임 회장을 뽑지 못하는 파행 끝에 지난 6월 신명주 명주병원 원장이 단독 출마해 새 회장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50여 일 뒤에 시작된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여기에다가 김예지 선수의 사격 모습이 전 세계 SNS에 화제가 되면서 한국 사격이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런데 신 회장이 운영하는 경기도 용인시의 종합병원 명주병원에서 임금 체불 논란이 제기됐다. 고용노동부에 임금이 체불됐다는 신고가 100건 이상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회장은 사격연맹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 회장에 취임하고 겨우 한 달여 만에 대한사격연맹 회장 자리는 또 비게 된 것이다.

◆ 표류하는 사격계를 안정시킬 적임자는 ‘한화그룹’

20여 년 동안 사격을 후원하던 한화그룹이 마음을 바꾼 이유는 김승연 회장을 비롯한 일부 인사만 알 것이다. 다만 파리 올림픽을 불과 9개월 정도 앞두고 후원을 끝낸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일 것이다. 더구나 ‘만약’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사격 후원사로서 파리 올림픽을 치렀다면 양궁의 현대차그룹에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것이다.

한화그룹 사옥. 사진=한화
한화그룹 사옥. 사진=한화

한화는 사격은 물론이고 프로야구를 포함해서 승마와 골프 등 여러 종목에서 마케팅과 지원 활동을 펼쳐왔다. 또 한화그룹의 덩치로 봐서 20여 년 동안 사격계에 지원한 200억 원도 그리 큰 부담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한화오션을 인수한 이후 ‘종합 방산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사격과 한화그룹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은 누구나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한화그룹이 사격계를 떠나긴 했지만, 사격인들은 지난 20년 동안 후원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쯤에서 한화그룹이 다시 마음을 바꾸면 어떨까? ‘헤어질 결심’을 바꿔서 ‘다시 만날 결심’으로. 신임 회장의 충격적 사임으로 표류하게 될 사격계를 다시 안정시킬 적임자는 한화그룹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는 게 현실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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