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 타임스(NYT)는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 다섯 가지를 들고 그의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지난 11일 NYT 편집위원회는 공화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약 5,000자 분량의 사설을 통해 “트럼프는 미 역사상 대통령직에 출마한 사람 중 가장 명백하게 대통령직에 부적합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사설은 대통령에게 중요한 도덕성과 원칙적 리더십, 인격, 언어, 법치주의 등 5개 요소를 조목조목 따졌다.

결론은 “트럼프는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많은 것들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사람”이라는 것. 사설은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을 흑백으로 싣고 온라인판은 배경 색까지 검은색으로 게재해 그들의 주장이 엄중함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트럼프는 미국의 수치(羞恥)이지,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어느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준엄한 비판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18일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한 뒤 공식적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 미국 역사상 일찍이 이런 ‘진상’후보는 없었다.

트럼프가 누구인가?

그는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질서를 흔들고 계층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후보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비리와 부도덕한 행위로 언제 어떻게 사법처리될지 모르는 상황에 있다. ‘미국의 양심’이라는 뉴욕타임스가 선동가인 그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비이성적’ 인기가 있어 현직 바이든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줄곧 1-2% 높게 나왔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결국 바이든은 인지장애와 고령 논란 끝에 재선 도전을 중도 포기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국’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2016년 트럼프가 극단적 양극화에 반기를 든 저소득 백인 노동자들의 분개와 분노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일부 평자들은 “백인 노동 계급이 그들의 경제적 손익을 미처 따져보지 못한 채 ‘가운뎃손가락’으로 투표했다”고 한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역사의 정치판에는 ‘영웅’들의 서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오늘날은 어떤가? ‘영웅’은 간데없고 ‘잡배’(말자-末者)들만 넘쳐난다. 김종필(JP)의 말처럼 ‘정치’라는 게 원래 ‘허업’(虛業)이라서 그런가.

우리 정치판도 예외가 아니다. 여당 야당 가릴 게 없다. 집권 여당이라는 국민의힘 얘기를 먼저 해보자. 최근 진행된 전당대회 과정이 참 볼만했다.

국민의힘은 23일 치러진 제4차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 1명과 최고위원 4명, 청년최고위원 1명을 선출했다. 당 대표에는 한동훈이 예상대로 선출됐다. 실로 막가는 전투 끝에 얻은 승리였다. 그에게는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는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넘어 거의 내전 양상으로 치러지면서 그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후보 진영 간 마타도어가 난무하고 지지자들끼리 욕설과 야유, 폭력 사태까지 발생했다.

한동훈 후보를 겨냥해 김건희 문자 ‘읽씹 논란’에 ‘댓글팀 운영 의혹’, ‘총선 고의 패배설’까지 제기하며 공격했고 한동훈이 당대표가 되더라도 조기에 낙마할 것이라는 이른바 ‘김옥균 프로젝트’까지 나돌았다.

김옥균은 후세 사람들로부터 ‘대한제국의 풍운아’, ‘비운의 주인공’, ‘미완성의 영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갑신정변의 주인공이다. 갑신정변은 고종 21년이던 1884년에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지만, 성공한 지 3일 만에 막을 내려 ‘3일 천하’라는 말을 회자시키고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간 사건이다.

4·10 총선에서 집권여당으로서 역대급 참패를 기록한 국민의힘이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당권 잡기에만 혈안이라는 비판들이 이어졌다.

이와 관련, 조국혁신당 대표 조국은 한동훈의 과거 댓글팀 운영 의혹과 나경원의 공소 취소 청탁 의혹에 대해 고발 조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범죄 집단의 자백 쇼를 보는 것 같다. 후보자들을 둘러싼 범죄 행위가 자고 나면 하나씩 터져 나온다”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제1차 정기전국당원대회를 오는 8월 18일 개최한다.

4·10 총선에서 175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둔 민주당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1명과 최고위원 5명을 선출한다. 전 의원 김두관이 ‘이재명 일극체제’를 비판하며 당권 도전에 나섰고, 한반도미래경제포럼 대표 김지수도 출사표를 던졌으나, 최고위원 후보들의 이 전 대표에 대한 충성 경쟁이 가관이다.

“이재명 대통령 시대를 여는 최고위원이 되겠다”, “이 대표와 함께 2026년 지방선거 승리와 정권 창출의 선봉에 서겠다”, “이재명 곁을 지키는 수석 변호인으로 든든한 방패가 되겠다” 등등 출마의 변들이 낯 뜨겁다. 당을 혁신하고 국민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식의 의연한 구호를 내거는 인사는 찾기 어렵다. 기껏 강성 지지자들을 ‘집단 쓰레기’라고 표현한 김두관의 오발(誤發)이 눈에 띈 정도. 윤석열 정권의 실정에도 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런 와중에 국회에서는 또 목불인견(目不忍見)의 난투극이 등장했다. 여야가 1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청문회’에서 정면충돌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청문회를 ‘탄핵용 불법청문회’로 규정하고 국회 본청 법사위 회의장 앞에서 회의 개최 반대 연좌 농성을 벌였다.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장 정청래 등 야당 법사위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서기 위해 등장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몰려들었고 의원과 보좌진, 취재기자가 엉키며 서로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여당이 집단적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폭도처럼 밀고 나오며 여당 의원 여러 명을 밟고 지나갔다”고 맞섰다. 왜 이런 추태들이 잊을 만하면 다시 연출되는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잘난’ 모습이다.

‘정치인’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정치꾼’은 다음 선거와 권력에 관심을 둔다는 매체의 비판이 매섭다.

정치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정치를 혐오했던 JP는 “정치는 인생에서 가져서는 안 되는 마지막 직업이자 말자(末者)들의 직업”이라고 한탄하곤 했다. 왜 그랬을까? 배신과 마타도어, 협잡과 결탁, 음모와 흉계 등등 인간의 온갖 추악함이 그 저변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현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함께 2천 년 전에 벌써 오늘날의 포퓰리즘 정치를 경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스승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주창했던 것처럼 민주정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어리석은 민중들 때문에 공동체의 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가, ‘데마고고스’(demagogos)들이 세계 도처에서 정치판을 유린하고 있다. 결국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있어야 하는 것은 민중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꿰뚫어 봤던 것처럼 ‘데마고고스’는 민중의 적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