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기업 신주 ‘할인 찬스’ vs 자금난 한계기업의 ‘주식 강매’
예외 없이 악재로 인식...HLB생명과학 55.8%↓, 신라젠 28.5%↓

올해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한 주요 코스닥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급락했다. 시장에서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악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모습이다.

높은 성장성을 갖춘 유망 기업이 도약을 위한 자금을 확보함과 동시에 신주를 싼 가격에 인수할 수 있는 투자의 권리를 기존 주주들에게 우선 배정한다는 본래의 취지보다는, 자금난에 처한 한계기업이 주주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측면이 크게 부각되면서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거대기업으로 손꼽히는 HLB생명과학과 신라젠은 지난 3월경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한 이후 현재까지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HLB생명과학 주가는 주주배정 유증을 결정한 지난 3월 21일 종가가 2만28원이었으나 다음 거래일 약 6% 하락한 1만8828원에 장을 마감했다. HLB생명과학의 경우 최초 예정발행가액이 1만1890원으로 시가 대비 싼 가격으로 책정됐으나, 증자 이슈로 인한 하락폭이 크지는 않았다. 당시 신약개발 관련 시장의 기대감이 높았던 덕이다.

실제로 당시 진양곤 HLB 회장은 기업설명회에서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기존 주주들에 대한 일종의 혜택으로 규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HLB 신약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앞두고,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후 HLB 신약의 FDA 승인이 불발되면서 주주배정 증자 이슈와 맞물려 HLB생명과학 주가는 급락했다. 지난 5월 16일 하한가를 맞으며 주가가 1만4310원에서 1만20원으로 내려앉았다. 이후 주주배정 유상증자의 예정발행가액을 1만1890원에서 6650원까지 내렸고, 증자 규모도 1500억원에서 731억원으로 줄었다. HLB생명과학은 이날 종가 8860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주주배정 유상증자 결정일 대비 55.8% 하락한 가격이다.

신라젠은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한 직후 주가가 급락했다. 증자 공시일인 지난 3월 22일 종가가 5241원이었으나 다음날 12.5% 하락한 4587원에 장을 마감했다. 예정발행가가 3315원이었으나 주가하락을 반영해 2990원으로 확정발행가가 결정됐다. 신라젠 주가는 이날 375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주주배정 유상증자 결정일 대비 28.5% 하락한 가격이다.

이 외에도 올해 다수의 코스닥 상장기업 주가가 주주배정 유상증자 공시 이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증자 공시일부터 이날까지 주가 변동율을 보면 ▲캐스텍코리아 26.0%↓ ▲SG 30.4%↓ ▲이렘 15.5%↓ ▲투비소프트 17.8%↓ ▲퀄리타스반도체 33.0%↓ ▲뉴보텍 8.90%↓ ▲셀리드 24.3%↓ ▲DXVX 29.7%↓ ▲자연과환경 17.9%↓ 등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주주배정 유상증자는 호재로도 악재로도 풀이될 수 있지만, 최근 자본시장에서는 주가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는 기업가치 성장을 위한 투자목적의 주주배정 증자를 찾기 어려운 반면, 외부 투자유치가 어려운 한계기업의 벼랑끝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상기 코스닥 상장사들중 주주배정 유상증자 자금의 주요 활용처가 투자자금인 경우는 자연과환경뿐이다. 자연과환경은 조달자금 207억원 전부를 신규공장 증설에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최근 주주배정 증자에 대한 자본시장의 부정적 인식이 반영된 영향인지 주가 급락을 피할 수 없었다. 나머지 기업들은 증자자금을 운영자금 또는 채무상환자금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할인율을 적용해 자본을 늘리는 행위 자체가 기업의 기준주가를 평가절하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만약 정말로 기업가치의 성장이 확실하다면 외부 투자자들이 줄을 설 것이고, 최대주주가 셀프 배정에 직접 나서 신주를 독식하는 경우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돈은 필요한데 마땅한 투자자를 찾지 못해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건우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