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22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지난 5·18 민주화 운동 44주년 기념식 관련 논평에서 여야 모두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언급했고, 조국혁신당 대표는 헌법 전문 수록뿐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개헌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의 헌법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이 확립되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헌법은 국가의 골격으로서 그동안 40년이 다 되도록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각종 선거에서 여야 할 것 없이 헌법 개정을 약속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던 건 각 정치세력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로 언급되어 왔던 내용은 권력구조의 변화다. 지금의 5년 단임의 대통령제가 장기 집권을 방지하고자 했던 시대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민주화 이후 운용되어 왔던 대통령제가 많은 부작용을 야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헌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개헌이 정파의 의도와 정략적 관점이 개입되어 있다면 개헌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범야권의 의석이 192석이고 여권에서 8석만 충원하면 개헌 의결 정족수인 200석을 채울 수 있지만 개헌이야말로 여야 합의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다수결로 밀어붙이면 국민투표에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22대 국회에서 야권은 대통령 임기 단축을 내용으로 하는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권력형태의 변경을 시도하면서 부칙에 현행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단축해서 다가오는 2026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하자는 의견을 조국 대표가 언급한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이러한 내용의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권이 동의할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생각이 대통령 선거를 조기에 치름으로써 야권 대표들의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한 것이라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개헌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이루어져야 한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사항은 여권에서도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 얘기가 흘러나오지만, 과연 4년 중임제가 되면 지금의 대통령제가 안고 있는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제가 안고 있는 문제 중 심각한 것 중의 하나가 여소야대 상황에서 이를 해소할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처럼 여야 협치의 수준이 낮고 진영의 적대적 대결이 일상화되어 있는 구도에서 5년 단임을 4년 중임으로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단순한 형식논리로 봐도 납득이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결선투표를 동시에 도입하면 과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상대방 진영의 유권자가 갖는 자발적 승복의 부재 문제를 다소 완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대통령제가 갖는 근본적 문제를 해소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4년 중임제를 하면서 국회 추천 총리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이는 사실상 이원집정부제나 다름없는 결과를 낳는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함으로써 권력의 분산을 도모할 수 있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지만 한국 대통령처럼 막강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과 국회가 합의하는 총리가 공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당장 어느 제도가 낫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5년 단임과 4년 중임제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의 대안으로 내각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정당정치의 수준이 매우 낮은 한국에서 연정을 전제로 하는 내각책임제가 순항할 수 있을지 역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요체는 어떠한 권력구조로 바꾸든 국민의 합의는 물론 여야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야권 대표들의 사법리크스를 어떻게든 조기에 정치적으로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헌이 이용된다면 이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정국에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서서히 변질되고 있는 한국 정치에서 개헌조차 생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이는 국민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개헌 논의는 시간을 갖고 국민과 정치권의 합의를 이뤄가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1987 체제의 성공적인 종식을 위하여 개헌은 필요하지만, 정략적 동기가 우선된다면 또 다른 상상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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