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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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잘 쓰는 단어는 아니다. 상남자가 무슨 뜻인가? 난데없이 우리 정치권에 ‘상남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발단은 홍준표 대구시장.

14일 홍 시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고위급 인사를 두고 야권에서 ‘김건희 여사 수사 방탄용’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 하는 사람이 5천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글을 올렸다.

그는 “당신이라면 범법 여부가 수사 중이고 불명한데 자기 여자를 제자리 유지하겠다고 하이에나 떼들에게 내던져 주겠느냐”며 “역지사지해 보십시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방탄이 아니라 최소한 상남자의 도리”라며 “비난을 듣더라도 사내답게 처신해야 한다”고 했다. 누가 들어도 윤석열 대통령을 감싸는 발언이었다.

홍 시장과는 달리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번 검찰 인사를 두고 “그저 마지막 몸부림 같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렇게도 2016년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건만 ‘T’ 익스프레스를 타네요”라고 적었다. 2016년의 전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을, ‘T’는 탄핵을 비유한 것으로 해석됐다.

15일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꿈에는 홍 시장의 ‘상남자’론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글이 등장했다. 작성자는 “보다보다 (참지 못하고) 글을 쓴다. 부인인 김건희를 지키려는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고자 하는 뜻은 잘 알겠습니다만, 저 같은 국민의힘, 홍 시장 열렬 지지자도 김건희를 지켜주는 것에 동감하는 듯한 메시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또 “대다수 국민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며 “준표 형이 이 나라를 통치 해주기를 염원하는 사람으로서, 김건희 관련 메시지는 조금 더 조심스러우셨으면 한다”고 했다.

해당 글에 홍 시장은 “누구를 쉴드치는 메시지가 아니라 상식적인 접근”이라며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고 댓글을 달았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하이에나 떼’라는 말을 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긁어 부스럼이란 말이 있다. 홍 시장이 윤 대통령에 아부하려다 윤 대통령을 저격하는 꼴이 됐다는 지적, 쓸데없는 말을 꺼내 야당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도 홍 시장의 ‘상남자’론 비판에 가세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본인이 (먼저) 공직을 그만둬야 한다”고. 안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홍 시장의 ‘상남자’ 발언에 대한 견해를 묻자 “그건 민간인의 이야기”라며 “공직자는 다른 많은 국민을 위한 의무가 있다. 그렇게 말씀하는 건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김병민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은 다른 시각에서 홍 시장을 비판했다. “겉으로는 대통령을 (상남자로)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씩 뜯어서 들어가 보면 결국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야당의 비판을 막아보려다 윤 대통령 부부를 오히려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시각이다.

도대체 ‘상남자’란 무슨 뜻으로 쓰이는 단어인가?

나무위키에 따르면, 남자 중의 남자. 진짜 남자 혹은 멋진 남성미가 넘치는 남자라는 의미의 단어다. 굳이 외래어를 쓰자면 약간은 좋지 않은 의미도 있는 마초(Macho) 정도가 될 것 같다. ‘짐승남’도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의미는 조금 다르다. 이해하기 쉽게 좀 낡은 느낌의 표현으로 설명하자면, ‘싸나이’, 혹은 ‘터프가이’.

‘상남자’들은 제3자를 지칭할 때 주로 이 XX, 저 XX 그 XX라고 말한다고 한다. 특히 검사 출신들의 경우 이 현상이 더 심하다고 한다. XX라는 말이 몸에 밴 것이 조폭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XX는 한때 이준석의 혈압을 올렸던 단어이기도 하다.

‘상남자’라는 단어는 2011년 이후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이 이전에도 남자 연예인, 특히 남자 아이돌에게 ‘상남자’라고 지칭한 사례가 있었다. 강한 자에겐 엄청나게 강한 면모를 보이나, 반대로 약한 사람에겐 한없이 자비로워지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상남자’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홍 시장의 얘기대로 윤 대통령은 과연 ‘상남자’일까?

국민들 눈에 비치는 윤 대통령은 우선 호방하다. 큰 덩치에 툭툭 내뻗는 걸음걸이가 무슨 보스 같기도 하고 장수 같기도 하다. 평소 술을 좋아한다니 일찍이 사업에 투신했다면 큰 성공을 거뒀을 것 같은 느낌도 준다. ‘상남자’라는 말은 누구 말대로 ‘애’들이 주로 쓰는 말이니 어감의 차이를 무시하고 그에겐 ‘대인배’라는 말로 바꿔 보자. 종편 시사프로그램 단골 출연자인 다혈질의 모 변호사가 윤 대통령을 얘기할 땐 거의 예외 없이 ‘대인배’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 거의 세뇌가 될 정도의 단어다.

물론 윤 대통령이 ‘대인배’인지 ‘소인배’인지는 아직 모른다. 공인과 사인의 길이 구분된다면 그가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상남자가 될지 중남자, 하남자에 머물지 그 건 철저히 그 자신에게 달려있다. 공의(公義)와 대의(大義)를 앞세운다면 그는 물론 ‘상남자’가 될 것이다.

공인에게 높은 도덕적 가치와 사회적 책무를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 공동체의 합의다. 대통령은 범부(凡夫)가 아니다. 공인 중의 공인이다.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은 일반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가치관을 갖고 공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책무가 있다.

사적인 목적으로 공직의 힘을 이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홍준표의 논리가 틀린 것이다. ‘상남자’. 너무나 낡은 아부라는 비판이 나왔다. ‘친숙하지만 의문의 여지가 있는’ 논리라는 것이다. 풀무원 창업자 원경선은 아들(혜영)이 국회의원이 되자 사무실에 걸어 놓으라며 액자를 선물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 정치권의 진영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오고 가는 언행 자체가 참으로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어쩌면 그리 구상유취한지, 보고 듣는 게 민망하다. 제발 하지 않아도 될, 졸렬한 싸움들 그만하시라. 대통령 부인 특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상남자’ 타령 이전의 문제다.

야권에서는 불교계 행사에 나선 김건희 여사를 향해 “김 여사가 갈 곳은 법 앞”이라면서 “특검부터 받고 행사에 나서라”고 몰아세웠다. ‘디올 백 사건’과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백(bag)인지 파우치(pouch)인지 모를 일이지만 ‘디올 백 사건’의 경우 검찰이나 경찰에서 수사하면 될 일이 아닌가? 사건 연루자들이 워낙 ‘쎈’분들이라서 당국이 일을 입맛대로 처리할 수도 없으려니와 사건 자체가 단순하다. 인력을 수십 명씩 투입하고 예산도 수십억 원을 쓸 일이 아니다. 이거야말로 빈집에 대포 쏜다는 비유가 적절하다.

문재인 대통령 회고록 문제는 또 어떤가.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방문이 대통령 부인의 첫 외교무대였다는 문 대통령의 회고를 여당 측 인사들이 물고 늘어졌다. “대통령 부인 특검을 하자면 김정숙 여사부터 하자” “외교부가 김 여사를 초청해달라는 의사를 인도 측에 먼저 타진한 ‘셀프초청’ 사실을 확인했다” “국민을 어찌 보고 능청맞게 흰소리냐”

오고가는 언사들이 국격을 망신시키고 있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운 이 시대에 아무려면 대통령 부인이 개인 관광을 하겠다고 단기(單騎)로 그 먼 곳을 다녀왔겠는가.

정치권 인사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 ‘상남자’ ‘상여자’라는 말, 이상한데 갖다 붙이지 말고 스스로 그렇게 되시는 노력들을 하시라. 비록 동의하지 않더라도 당파를 초월해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화하는 법을 배워 실천해 보시라. 바로 당신들이 ‘상남자’ ‘상여자’로 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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