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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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전 국민이 잘못된 부동산 정책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습니다. 집을 팔지도 사지도 못하고 두 발 뻗고 편히 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은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를 내세워 실패를 성공이라고 국민을 속였습니다.”

전 국토교통부 장관 원희룡이 22년 12월 SNS에 올린 글이다. <통계 조작은 국정 농단입니다>라는 제목이 준엄(?)하다. 그에 따르면, 정부를 믿은 국민은 바보가 돼버렸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원 전 장관은 “국가 정책은 상당 부분 통계에 근거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정책 결정의 근거가 되는 통계가 왜곡되면 국가 정책이 왜곡되고 그 결과는 국민의 고통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천번 만번 옳으신 말씀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랴!

윤석열 정부가 정말 큰 일을 저질렀다. 서울 노원구나 경기도 시흥시가 통째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수준의 오류가 정부 통계에서 발생했다. 2023년도 국토교통부 주택공급 통계에서 19만여채가 한때 누락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19만호는 수도권의 웬만한 기초지자체의 주택 총량에 맞먹는다. 서울 노원구와 강남구, 경기 시흥시와 안양시의 주택 총량이 누락치보다 적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국토교통부는 작년 7월∼12월 시스템 오류로 재개발·재건축과 300채 이상 주상복합이 주택 공급 실적 통계에서 누락됐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를 올해 1월 말 인지해 약 3개월 동안 전수조사 등 오류 정정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지난해 주택 준공 물량은 기존 발표보다 40% 가까이 늘어난 43만여채로 정정됐다. 특히 도심 정비사업이 집중돼 있는 서울은 실제 준공 물량이 4만여채로, 오류를 정정하기 전보다 50% 이상 많았다.

인허가와 착공 물량도 증가했다. 총누락 물량은 19만여채로 분당신도시와 일산신도시를 합한 것보다 많다. 집값을 2억원씩만 잡아도 24조원어치 국가경제 요소가 한때 누락됐던 것이다. 통계오류를 바탕으로 나라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정부가 강조해 온 ‘공급 위축’ 진단이 현실과 괴리를 보이게 된 것이다.

정부는 통계 시스템 개편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오류가 반년간 방치된 것도 문제고 이를 바탕으로 주택정책이 수립된 점 또한 지적받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정부가 내놓은 주택정책은 오류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정책의 신뢰성이 땅에 떨어졌다.

지난해 9월과 올 1월에 발표된 부동산 대책들이 우스운 꼴이 됐다. 수도권 대규모 신도시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등 야심 찬 개발 정책의 근거들이 뜬구름에 다름 아니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공급 여건이 악화하면서 단기적으로 주택공급이 위축됐다”거나 “작년 주택공급의 선행지표인 인허가, 착공이 위축됐다”면서 잘못된 통계를 근거로 공급 위축을 강조했던 게 어이없게 된 것이다.

정부가 주택공급 위축을 꾸준히 강조한 영향은 시장에 그대로 반영됐을 것이다. 주택 매물이 없다는 신호로 해석돼 주택 매매가격은 물론, 전세 가격에도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무주택 서민들의 고충도 덩달아 커졌을 것이고.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

정부의 주택 공급 통계는 집 짓는 건설업체뿐 아니라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무주택자, 전월세 임차인들까지 관심을 갖는 중요 지표다. 착공, 인허가 실적은 향후 2∼5년간 아파트가 얼마나 공급될지 미리 보여줘 집값의 방향을 가늠케 하는 기본 통계다. 이런 통계가 실제와 큰 차이를 보일 경우 개인과 기업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배곯는 것 다음으로 서러운 게 집 없는 것이라 했던가.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측한 사람이 이 고금리 시대에 영끌을 해서 집을 샀다면 어떻게 됐을까. <광수네 복덕방> 이광수 대표는 앞으로 1-2년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공급이 부족하지 않은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수긍이 가는 전망이다.

정부는 주택공급이 부족한 것은 맞다고 고집하고 있다. 국토부는 “허가의 경우 통계 정정 전에는 전년보다 26% 줄지만 정정 후에는 18% 줄어드는데, 이는 정책 방향성을 바꿀 정도의 큰 차이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단순한 ‘데이터 누락’이라고 밝혔지만, 그 규모만 19만 채가 넘는 데다 이미 해당 통계를 근거로 대책까지 마련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예사롭지 않다. 국토부의 늑장 대처도 비판의 대상이다. 지난해 7월 시스템을 개편한 뒤 반년 이상이 지나도록 통계의 정확성을 검증하지 않았고, 오류를 발견하고도 정정하는 데 석 달이나 걸렸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사이 발표된 1월과 2월 주택통계 자료 역시 오류가 있는 공급 통계를 그대로 활용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1월 말 이후 전수조사 과정을 거치느라 1월과 2월 주택 통계는 수치를 수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정부 진단의 근거가 모두 틀린 통계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태평스럽고 한가한 태도가 기막히다. 너무 무책임하다.

요즘은 누구나 데이터와 컴퓨터만 있으면 필요한 통계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용된 데이터가 부실하거나 통계적 오류가 있을 경우 상상 이상의 위험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계 혹은 컴퓨터 공학에서 얘기하는 금언을 기억해야 한다. “쓰레기를 입력하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0ut), ‘쓰레기’를 기초로 정부 정책을 입안한다? 끔찍하지 아니한가.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두 차례 큰 대책을 내놓으면서 통계 오류를 찾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시장이 관망세가 아니라 변동성이 커지는 변곡점이었다면 시장에 큰 혼란을 줄 수 있었다”고 했다.

엉터리 통계의 난맥을 강도 높게 비판한 언론이 있다. 바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동아일보와 CBS 노컷뉴스다. 이 두 신문과 방송은 사설과 집중 보도 등을 통해 윤 정부의 ‘엉터리 짓’을 질타했다. 왜 이 땅에 파사(破邪)를 외치는 신문이 필요하고 곧은 소리를 내는 방송이 존재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일깨워 줬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과 소득 관련 통계를 정부 정책에 유리하게 조작했다는 의혹은 현재 관계 당국의 조사와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감사원은 문정부 시절 4년간 부동산 관련 통계가 94차례 조작됐다며 장하성,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22명에 대해 검찰 수사를 요청했다. 2017년 상반기부터 집값이 오르자,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안정화 대책들을 잇달아 쏟아내면서 엉터리 국가 통계를 근거로 집값이 잡혔다고 밝혔다는 것. 정권이 바뀐 뒤 감사원은 1년간의 감사 끝에 이 통계가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진보정권이라는 노무현-문재인 정권 때 전국 아파트 가격을 폭등시킨 것은 국민과 역사에 큰 죄(罪)를 지은 것이었다. 그들의 공이 있다면 그 공을 다 까먹고도 남을 실책(失策)이었다. 감사원 발표를 두고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통계 조작’이 아니라 ‘감사 조작’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충격적 국기 문란’ 의혹은 검찰 수사에서 그 진위가 가려질 것이다.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문재인 정부든 윤석열 정부든 나라를 경영하겠다는 집단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게 충격적이다. 허탈하고 허망해진다. ‘준비된’ 대통령, ‘준비된’ 정부가 아닌 ‘어쩌다’ 집권한 세력들이어서 그런가. ‘엉터리 통계’, ‘엉터리 정부’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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