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더 그레이’ 연출…“원작과는 다른 이야기”
“구교환 영화적 감각 좋고 전소니 똑똑한 배우”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인터뷰》

독립적 생존이 불가능하며, 번식으로 종족 보존도 불가능하다. 가능한 것이 있다면 오직 인간의 몸에 침투에 뇌를 먹고 몸을 조종하는 수밖에. 어디에서인지 온 불명의 존재가 인간의 몸을 강탈한다는 내용의 만화 ‘기생수’가 ‘부산행’ 연상호(45) 감독을 만나 스핀 오프작 ‘기생수: 더 그레이’로 재탄생했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한 연 감독은 ‘아키라’ 못지않게 ‘기생수’도 최애 작품 중 하나였다며, 출판사 고단샤에 원작자 이와아키 히토시까지 그의 구상을 좋아해 덕분에 제작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시리즈인 이 드라마는 일본이 아닌 한국이 배경이고, 기생 생물이 주인공 정수인의 얼굴 반쪽을 차지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배우 전소니가 정수인 역을, 구교환이 수인의 도피를 돕는 설강우 역을 맡았다.

다음은 연 감독과의 일문일답

―이와아키 작가와의 작업 과정이 궁금한데요.

“실제로는 뵌 적이 없어요. 진짜로 필담만(웃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히스토리에’란 작품을 연재 중이신데 그 때문인 거 같아요. 모든 건 출판사를 통해 이뤄졌고, 작가님도 제가 드리는 시나리오를 계속 확인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브리핑이란 게 있어요. 고사告祀 지내기 전에 어떻게 찍겠다고 정리하는 과정인데, 그것도 다 녹화해서 보내고 했죠.”

―원작과의 차이점은?

“차이점이라기보다, 우선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니까요. 대신 원작이 공존과 공생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이 작품 역시 수인과 기생 생물 ‘하이디’가 성격은 다르지만 서로를 어찌 이해할 것인지가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둘의 소통이 더 극적이어야 한다고 봤고요. 예를 들면 원작에서는 주인공과 기생 생물이 서로 직접적으로 소통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가 않죠. 죽을 위기였던 주인공을 기생 생물이 치료했고 그래서 오래 못 깨어 있는 설정인데, 또 이건 만화에서 가져온 원 설정이에요. 기생 생물은 제가 창조한 게 아니라 설정만큼은 특별히 새로운 걸 넣을 수가 없었어요. 날개 달린 기생수 등도 다 이전에 원작에 나왔던 거고요.”

조직에 기생하는 인간과, 인간에게 기생하는 기생 생물과의 조응이 본작의 주안점이다. 연 감독은 전자의 경우 인간이 조직에 머무는 일이 과연 ‘기생’ 두 글자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서로 간에 의지하며 사는 ‘협력’인지를 모두가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함께 작업한 전소니와 구교환을 자랑하자면?

“수인이는 우울하고 하이디는 차갑다 보니 둘 사이의 메신저가 필요했어요. 무거운 느낌의 배우가 하면 너무 힘이 들어갔을 텐데, 영화적 감각이 좋은 구교환 배우가 언제가 진지하고 아닐지를 잘 구분했죠. 전소니 배우는 첫 촬영이 마트 캐셔로 등장하는 장면이었는데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인데, 그걸 표현하기보다 분위기로만 풍기더라고요. 나중에 보니까 본인이 가진 원래 룩이 아니고 다 연기적으로 계산한 거였고요. 똑똑한 배우더라고요.”

―올해 ‘선산’이 공개됐고 ‘지옥’ 시즌2도 공개 예정인데, 창작가로서의 원천은?

“틀에 저를 가두는 편이에요. 혼자서 ‘이런 걸 만들어야 해’ 하고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저 자신을 던지는 거죠. 그러면 생쥐처럼 그 안을 뺑뺑 도는 거예요. 물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괴로운 거죠. 그러다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오고요. 제가 저에게 외주를 주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외주 일이라는 건 남의 일이고 괴롭잖아요. 하기 싫잖아요. 근데 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어떻게든 하게 돼요. 그런 과정이에요. 근데 제가 하고 싶은 건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거예요. 저는 저를 잘 알아요. 내버려 두면 진짜 아무것도 안 할 사람이에요.”

―대중의 반응에 이제는 초연한 편인가요?

“그 무게에서 이젠 빨리 빠져나오려고 하죠.”

―대중성을 버리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건 아니고요. 왜냐하면 그 생각을 접었더니 돈 주는 데가 없더라고요.”

―돈 주겠다는 곳이 있고, ‘돼지의 왕’ 같은 작품을 다시 만들라고 주문한다면?

“당연히 다시 못 만들죠. 정확하게 얘기하면 ‘돼지의 왕’을 만들 때의 연상호하고 지금의 연상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거든요. 단순히 상업 쪽으로 넘어왔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때는 제가 총각이었는데 지금은 애가 둘이에요. 자학하는 시간도 그때랑 비교하면 많이 줄었죠. 만약 지금 제가 그때처럼 자학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추한 기성세대고, 그렇기에 그때를 유지할 수 없는 거죠. 자연스레 작품에 대한 생각도 전과 달라지겠고요. 요새 들어 과거 제가 만든 작품을 다시 보곤 해요. 어떤 때는 너무 낯설어요.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지?’ 싶고요.”

자신이 기성세대가 된 것을 구차하게 거부하지 않는 연 감독이었다. 그는 “얼마 전 아침에 촬영하려고 새벽에 나왔는데 벚꽃이 지는 편의점 앞에서 한 젊은이들이 밤새 술을 먹었더라”며 “‘아, 저 기분 알지’ 싶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나였다면 그냥 술 취한 아저씨였을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마땅히 바뀐다고 생각해요. 만일 그대로여도 사람을 있는 그대로 안 보기도 하고요. 그러니 바뀌는 게 맞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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