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시간 15분간 첫 단독 회담을 4월 29일에 가졌다. 이 대표는 차담 형식의 회담에서 A4 용지 10장 분량의 15분 모두 발언에서 ‘민생 회복 지원금 수용’, ‘이태원 특별법 및 채 상병 특검법 수용’, ‘전세사기 특별법 입법’,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의혹 정리’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총 300석 중 180석(60.0%)을 차지했다. 헌법 개정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압승이었다. 그런데, 거대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입법 폭주의 ‘국회 독재’에 빠져들었다. 개원 초기 제16대 국회(2004년)부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주었던 법사위원장을 차지했다. 제13대(1988년) 국회부터 의석 비율대로 여야가 상임위원장을 나눠 가지던 협치의 전통마저 깨고, 제21대 국회가 개원하자 민주당은 17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독식했다.

이후 민주당은 국회에서 민생 살리기 법안보다는 오직 특정 세력의 표심을 잡기 위해 포퓰리즘 입법을 밀어붙였다. 간호법 제정안 단독 처리, 양곡관리법 개정안 강행 처리, ‘노란 봉투법’ 등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등 국민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랐다.

22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을 일부 내용만 바꿔 재발의해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이 법안은 정부가 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쌀을 의무 매입하면 과잉 생산을 유발해 장기적으로 쌀값이 폭락할 수 있고, 국가 재정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어 정부 여당은 반대했다. 민주당은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라고 불리는 ‘민주유공자예우법’도 단독으로 의결해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1964년 3월 24일(한·일 회담 반대 시위) 이후의 민주화 운동 사망자와 부상자, 그 가족과 유가족을 유공자로 인정해 지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당은 “반국가 단체 판결을 받은 남민전 사건과 경찰관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의대 사건 관련자까지 유공자로 만들 수 있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민주당은 전세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을 국가가 물어준 뒤 나중에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자금을 회수하는 ‘전세사기 특별법’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여당은 구제 비용이 3조~4조원이나 들어가며 “악성 임대인의 채무를 국가가 갚아주자는 것으로 매우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갤럽 조사(10월 22~24일)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금까지 21대 국회 역할 수행에 대해 13%가 ‘잘했다’, 80%는 ‘잘못했다’고 평가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2022년 12월에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4~6일)의 국가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15%로 최하위를 차지했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국회가 81%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하튼 21대 국회는 민생·경제 입법과 예산심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여야 간에 진흙탕 싸움으로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참담한 결과는 의회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의 책임이 더 크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 국회‘에 주력하면서 입법 폭주 등으로 국정 발목 잡기에 집중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대통령에게 무조건 국회를 존중하고 협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자신들은 협치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협치를 요구하는 것은 협치를 지워버리겠다는 처사다.

민주당은 영수 회담을 마치고 윤 대통령을 향해 ‘민생 회복을 위한 의지가 없어 보인다’ ‘변화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에게 묻는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가 과연 민생을 챙기는 것이고 이번 총선의 민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민주당에게 또 묻는다. 민주당은 입법 폭주에 대한 변화의 의지가 있는가? 총선 직후 민주당의 입법 행태를 보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대한 유감 표명‘을 요구했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 안건조정위 무력화, 본회의 직회부 등 반민주적이고 반의회적인 일들을 일상화했다. 대통령이 정당한 절차를 걸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잘못이고 민주당이 거대 의석을 무기로 각종 법안을 단독 처리한 입법권 남용은 괜찮은 것인가? 자신들은 협조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에게만 거부권 행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설득력이 없다.

민주당 차기 국회의장 후보들은 “제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 “국회의장은 중립이 아니다” “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 “(의장이) 기계적으로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발언들은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한 국회법(제20조의2)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 법의 입법 취지는 “의장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국정운영에 초당적으로 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을 위한 법의 정신을 외면하는 사람이 국회의장이 되면 국회에선 여야의 강 대 강 대치 전선이 가파르게 형성될 것이고, 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더 강화될 것이다. 민주당이 21대 국회 입법 폭주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압승했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면 착각이고 오만이다. 민주당은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2년 후에 정권을 뺏긴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을 준엄하게 심판했다. 마찬가지로 향후 거대 야당의 오만한 입법 폭주는 반드시 심판받게 된다.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정치권이 싸우지 말고 민생을 챙기라는 것이다. 단언컨대,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는 협치의 적이고 민생을 책임지지 못한다. 물론 협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이타적으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의 요구 사항을 경청만 하지 말고 협치로 푸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야당도 협치의 물꼬를 트고 22대 국회에선 민생 협치가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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