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입법·사법·행정의 3부가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서 국정을 운영해 나간다는 대통령제의 원리가 한국 정치에서는 제대로 관철되지 않는다. 행정부와 여당이 집권세력을 형성하면서 여당은 의회의 일부로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정 협의란 용어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제의 권력구조는 기본적으로 모순적 형태를 갖는다.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입법은 국회에서만 가능하다. 정부 입법도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여당은 정부가 제출한 법안을 거의 수정 없이 통과시킨다. 이는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정치에서 야당이 정부 정책에 동의하는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에서 여당이 입법부의 일각을 형성한다고 해서 행정부 비판과 견제에만 치중한다면 국정 교착을 초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제22대 총선 결과 나타난 더불어민주당 175석, 야권연합 192석, 국민의힘 108석의 의석 분포는 사실상 여권의 국정운영 동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민주화 이후 여소야대가 일반화되었다고 하지만 이번과 같은 의석 분포는 찾을 수 없다. 2000년 16대 총선 때 집권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이 여당으로서 패배할 당시 의석은 야당인 한나라당이 133석, 여당 115석, 자유민주연합이 17석이었다. 이번 여당의 참패는 당시 여당의 패배와 비견되기 어려울 정도다. 협치와 소통을 주문하지만 기본적으로 국회의 압도적 의석을 가진 야당과 거국내각에 가까울 정도의 협력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한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의 결과와 관계없이 윤 정권은 사실상 식물정권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듯 의회와 행정부의 부정합이 일상이 되면 국정이 순조롭게 운영되기 어렵다. 정국은 항상 팽팽한 긴장상태를 이어가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과같이 200석에 가까운 압도적 의석의 야당 대표들의 사법리스크가 현존하는 한 야권은 언제든지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과 탄핵 등의 유혹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의 임기 중에 총선도 없다. 제23대 총선은 윤 대통령 임기 종료 후 1년이 지난 시점이다.

제22대 국회 임기 중 상상 이상의 정치적 격변이 있을 수 있다. 개헌으로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시키고 조기 대선을 실시하여 야권 주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22대 국회의 야당 대표들의 사법리스크를 해소할 수도 있다. 개헌의 진정성에 의문이 가는 이유이다.

이러한 개헌은 상대방을 압살하려는 조선 중기 이후 서인과 남인의 처절한 대결 구도를 연상하게 한다. 숙종과 영·정조 연대에 벌어진 노론과 소론의 대치, 남인과 노론의 목숨을 건 쟁투는 조선 후기로 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적대를 고착화한다. 19세기 조선 정치의 악령이 기시감으로 드는 건 지금의 여야의 수장들이 처한 위치 때문일 터다.

이러한 대척에 한계가 있다. 상대를 제거해야 생존하는 정치는 19세기적 퇴행 정치의 극단적 모습이다. 이제 권력구조 변경을 위한 개헌이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1987 체제의 종언이라는 명분으로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으로 바꾸는 데 그치고 대통령 임기를 단축한다면 현재의 대통령제의 각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는 단임제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제라는 모순적 권력 형태 때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막연하게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태도다.

동기가 어찌됐든 만약 개헌 논의가 진행된다면 내각제 개헌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내각제가 갖는 무수한 문제점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지금의 정당정치의 수준을 가지고 연정과 협치를 기본으로 하는 내각제를 운용할 수 있겠느냐는 기본적 반론이 있다. 그러나 내각제는 의회와 정부의 융합, 의회 중심의 정치를 기본으로 하고 협치가 필수이기 때문에 지금의 극단적 대결 상태를 해소할 수 있다.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즉 의회의 지배세력과 행정부 권력이 분할해서 국정을 운영하는 여소야대가 갖는 문제가 상당한 한국 정치에서는 더욱 절실하다.

내각제 정권이 5·16 쿠데타에 의해 무너진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내각제는 국정 최고책임자가 국민의 신임을 잃거나 의회가 유권자의 신망을 저버릴 때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는 유연성도 가지고 있다. 최고권력자나 의회가 특정한 임기 동안 탄핵이 아니면 교체가 되지 않는 경직성으로는 점점 다변화되는 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

제22대 국회는 대결 정치를 종식하고 상생의 정치를 열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권력구조의 변경을 골자로 하는 제7공화국으로의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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