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윤석열 정권 출범 3년 차에 치러진 이번 선거를 관통했던 프레임은 정권심판론이다. 국민의힘이 운동권 청산론과 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내세웠지만 정권심판론을 넘지 못했다. 역대 총선거 역시 정권심판론이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선거였다.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달리 회고적 성격의 투표 경향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경우는 2000년 16대 총선과 2016년 20대 총선의 두 번에 그쳤다. 그것도 2016년에는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보다 불과 한 석 차이로 졌다.

그렇다면 왜 정권심판론이 작동했던 역대 선거는 여당이 승리했을까. 정권과의 차별화다. 그러나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정권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이 국민의 관심이 된 상태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했지만, 대통령실의 사퇴 압박에 직면했고, 황상무·이종섭 사태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했으나 묵살되고 당사자들의 뒤늦은 사퇴 이후 한 위원장은 ‘문제가 해소’됐다는 억지 명분을 내세웠다.

사후적·결과론적 분석 오류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가 야권의 압도적 승리, 여당의 궤멸적 패배로 귀결된 데에는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다. 여러 직간접적 원인이 있을 수 있고, 선거기간 중의 크고 작은 변수 등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윤 대통령의 리스크가 관리되지 못한 데 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의 같은 기간의 지지율을 비교해 볼 때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평가는 정체를 면치 못했다. 이태원 참사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는 무책임했고 책임지는 고위공직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야당은 정치적 파트너가 아닌 적대와 증오의 대상이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야당 대표와의 회동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에 대해 진지하게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은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에게도 찾아볼 수 없었다. 관행으로 되어있는 신년 기자회견은 생략됐고 언론·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도어 스테핑도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중단된 이후 재개되지 않고 있다. 의정 갈등 관련 대통령 담화는 이해당사자와의 소통보다는 의대 증원 숫자의 당위성을 홍보하는 데 그쳤다.

선거는 끝났다. 윤 대통령은 “국민 뜻을 겸허하게 받들겠다”고 했고 한동훈 위원장은 “선거 결과에 책임지고 국민께 사과한다”며 사퇴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일괄 사의를 표하며 인적 쇄신을 예고했다. 그러나 쇄신과 혁신은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수직적 당정 관계와 국정 방식에 대한 숱한 비판과 지적에도 국정 최고책임자의 인식은 바뀌지 않았고 여당은 대통령실에 종속된 기구로 전락했다. 당 대표 선출도 용산 대통령실의 의중에 좌우됐다. 대통령과 불화한 이준석 대표는 결국 당에서 둥지를 틀지 못하고 신당을 창당함으로써 생존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야당의 압도적 의석이 여야 관계의 극한 대립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선거 기간에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할 태세다. 22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1대 국회 대치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 조국 대표는 공공연하게 대통령 탄핵과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을 공언하기도 했다.

여권이 생존하려면 윤 대통령의 화두였던 공정과 상식의 관점에서 정치 사회적 이슈에 반응하고 국민과 전방위로 소통해야 한다. 불통과 오만, 독선의 이미지가 굳어진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지 않으면 윤 대통령과 여권의 위기는 가중될 것이다. 유권자 분포가 진보 우위의 구도로 재편되면서 통합보다는 이념을 앞세운 정권의 지향은 중도와 보수의 운신을 더욱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

중도 확장보다는 보수결집에 전력투구한 여당 전략의 실패는 현 여권의 역량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의 참패 이후 위기의식을 느끼는 듯하던 여권은 결국 민심과 괴리되면서 변화와 혁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민심을 얻는 데 왕도는 없다. 정부 여당은 지금까지의 국정운영 기조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국민에게 진정성 있는 쇄신의 모습을 보여줄 때 보수의 지평이 열릴 수 있다. 사법 리스크를 고리로 한 이재명·조국 대표에 대한 공세는 현 단계에서 설득력이 없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본 틀은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향배이다. 사법 리스크는 ‘비법률적 방법’으로 대체될 수 없다. 따라서 이는 사법부에게 맡기고 정치의 차원에서 야당과 소통하고 경쟁해야 한다. 야당에 대한 지지라기 보다 윤 대통령에 대한 징벌적 심판의 의미가 강한 선거였기 때문이다. 민의에 부응하면 승리하고 그렇지 않으면 패배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선거이다. 제22대 총선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단호했다.

변화의 첫 단추는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의 인선이다. 총리 인선을 야당과 상의하고 야당에 추천을 요청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국회의 임명 동의의 관문을 넘을 수 있고 신임 총리에게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각료제청권을 일부라도 실질적으로 행사하게 하면 인사청문회도 통과할 수 있다. 사실상 거국내각의 성격을 띠고 이러한 변화가 지지율의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여소야대 정국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고 새로운 변곡을 맞이할 수 있다. 윤 정권은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통함으로써 지지율을 올리는 것만이 생존의 길이다. 과연 윤 대통령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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