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또 한 번의 위성정당 전성시대를 맞이한 듯하다. 그런데 그 위력은 지난 21대 총선보다는 덜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의 민도를 자랑하는 우리 국민들이 한 번은 속을 수 있지만, 두 번 속을 확률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즉, 위성정당이 처음 등장했던 21대 총선 당시는 코로나도 있고 해서, 정신없이 정당 투표에 임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상황도 아니고, 지난번 위성정당에 대한 학습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적 차이는 위성정당 심판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심판론은 두 방향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양당의 위성정당에 투표하지 않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제3의 정당이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인격 투표, 즉 지역구 출마자에 대해서는 투표하지만, 비례 정당 투표는 거부하는 방식이다. 투표용지를 두 장 받기 때문에, 하나는 투표를 거부하거나 투표용지를 아예 받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법적으로 규제할 도리가 없다. 즉, 비례 정당 투표는 거부하고 지역구 후보에 대해서만 투표해도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방식으로 정당 투표를 거부하는 경우는 다수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비례 전문 정당의 수가 48개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럴 경우, 투표용지의 길이는 50cm를 넘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긴 투표용지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희화화하는데 매우 큰 ‘기여’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파생되는 정치 혐오가 정당 투표 거부로 표현될 가능성 역시 매우 농후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왜 위성정당을 만들면서까지, 국민을 기만하는 이런 선거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 ‘이상한’ 준 연동형 비례제를 왜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준 연동형 비례제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이 내세우는 가장 큰 명분은, 준연동형제를 통해 표의 가치와 등가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국회에 군소 정당을 진입시킬 수 있어,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제도에 투영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야가 위성정당을 만들면, 표의 가치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 아니라, 표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셈이 된다. 또한 국회에서 다양한 군소 정당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힘들다. 21대 국회를 보더라도, 민주당의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을 구성했던 정당들은, 기본소득당과 시대 전환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당에 흡수됐다. 그나마 남았던 시대 전환은 국민의힘과 합당했고, 끝까지 남아있었던 정당은 용해인 의원의 기본소득당뿐이었다.

이번 경우가 지난번과 다를 이유는 전혀 없다. 이른바 시민사회 세력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선거 이후 민주당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고, 논란의 대상인 진보당만 그나마 독자 노선을 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진보당은 통진당 후신 여부 논란과 거기서 파생되는 친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상황이 이러니, 지난 21대 총선 당시보다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다양성’과 ‘혼란과 우려’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아예 자신들의 위성정당인 국민의 미래는 ‘국민의힘과 동일한 정당’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민주당의 입장은 조금은 다르다. 민주당의 경우는, 자신들의 위성정당을 ‘준 위성정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자신들의 위성정당이 준 위성정당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더불어민주연합 내부에 시민사회 세력도 존재하고 진보당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지난 21대 총선 당시의 민주당의 위성정당도 준 위성정당이라고 부를 만하다. 하지만 결과는 앞서 언급한 대로였다. 즉, 준 위성정당이든 위성정당이든 결과는 똑같다는 말이다. 준 위성정당이 위성정당보다 나을 것이라는 주장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여기에 더 희한한 것은,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기 때문에, 자신들도 어쩔 수 없이 위성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국민의힘의 방해 때문에 위성정당 방지법을 만들지 못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들은 단독으로 통과시켰음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만일 민주당이 위성정당 방지법제정 필요를 절감했다면, ‘당연히’ 위성정당 방지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국민의힘 탓만 하고 있으니, 이런 주장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과 같이 대놓고 위성정당이라고 주장하는 측이 나은지, 아니면 부득부득 자신들의 위성정당은 준위성정당이라고 주장하는 측이 그나마 나은지는 독자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형태의 선거제도 때문에, 50cm가 넘는 투표용지를 받고 당황할 유권자들과, 이런 투표용지를 관리하며 개표 작업을 해야 하는 선관위 공무원들의 ‘생고생’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연 이런 우스꽝스러운 제도를 그냥 놔둬야 하는지, 22대 국회는 숙고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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