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22대 총선 대진표가 거의 확정되어 가면서 공천정국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40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선거 판세는 여러 번 고비를 맞을 것이다.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여러 변수 중에서 가장 파괴력이 큰 요소가 이른바 ‘바람’이다.

4년전 21대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바람은 가히 위력적이었다. 수도권 121석 중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불과 16석 확보에 그쳤다. 서울 48석의 선거구 중에서 미래통합당은 10석에도 미치지 못했다. 강남 3구와 용산이 전부였다.(강남 3구중 송파 병은 민주당 승리)

그러나 대선 이후인 2022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구청장은 국민의힘이 거의 싹쓸이했다. 인물, 구도, 정책, 이슈 등도 선거의 주요 변수지만 이렇듯 수도권과 서울에서 선거의 경향성을 규정하는 폭발력 있는 변수는 ‘바람’이다.

그중 공천 관련 이슈는 선거의 향배를 결정지을 수 있는 대형 변수다. 2016년 문재인 대표의 민주당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해찬, 정청래, 전병헌 등을 공천 배제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이른바 ‘옥새파동’ ‘친박공천’ 등 파열과 잡음으로 얼룩진 공천으로 선거를 그르쳤다. 당시 안철수의 탈당으로 인한 야권 분열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제1당의 지위를 잃었다. 역대 선거는 공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이 얼마나 선거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공천 국면에서 민주당의 일련의 행태는 민주당 우위의 선거구도를 국민의힘 우세로 역전시킬 수 있을까. 지난해 말 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이 100석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한동훈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고 용산 대통령실과의 관계 정립, 국정기조의 변화 가능성 여부 등 여전히 여권에 대한 선거 전망은 한 위원장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전망은 설득력을 잃었다. 민주당의 공천 난맥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대표는 비록 제1당의 지위를 잃더라도 자신의 측근 그룹과 단일대오를 형성해야 사법리스크, 향후 대권 도전 등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는 원내외 친명 그룹과 비명 그룹의 확연한 공천 차별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민주당이 고전한다면 이는 친명 후보자들의 선거패배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친명 공천은 결국 아무런 효용을 발휘하지 못한다. 명분과 실리 중에서 실리에 전폭적인 무게를 두는 공천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실리도 챙기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공천이 끝나고 양당의 대진표가 확정되면 공천 관련 이슈를 대체하는 쟁점들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다시 정권심판론의 불을 지필 수 있느냐가 선거의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선거는 유권자의 인식 속에 어떠한 의제와 이슈가 더 지배적으로 작동하는가가 관건이다. 공천 국면이 사라지더라도 불과 40일도 안 남은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유권자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민주당의 공천 잡음은 민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민주당에서 공천 관련 ‘사당화’ 논란은 선거의 구도를 왜곡시킨다. 윤석열 정부의 무수한 실정을 덮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 이재명의 선거구도가 한동훈 대 이재명의 구도로 대체되면서 윤 정부의 지지율 정체가 가려지고 민주당 우세의 정당지지도의 양상도 바뀌었다.

공천을 의식하여 이재명 친화적인 강경 발언을 일삼었던 원내외 친명 인사들의 계산은 주효했다. 그러나 대의가 상실된 정치, 명분이 실리의 종속변수로 전락한 정치에서 이를 주도한 인물들의 ‘정치’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당선 가능성 여부에서 그렇고 중장기적으로는 당위와 가치의 측면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민의힘의 공천에도 지적받을 점이 많다. 유권자, 특히 중도층의 인식 속에 민주당의 공천과정이 어떻게 각인될지를 생각한다면 정도(正道)가 보이겠지만 이미 공천은 되돌릴 수 없다. 민주당은 새로운 이슈와 쟁점으로 선거판을 주도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 선거가 공천 담론으로만 얼룩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진표가 완성되면 민주당은 진보정당다운 어젠다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국면을 바꿀 이슈를 가지고 중도층에 호소하고, 윤 정권의 여러 문제점들을 설득력있게 소구할 수 있어야 한다.

‘검찰독재 청산’의 프레임은 극성 지지층에나 먹히는 주제다. 선거판을 가로지르는(cross-cutting) 의제를 개발하고, 정권심판의 당위를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 이러한 의제 개발과 이슈 제기에 성공한다면 공천에서 잃은 점수를 만회할 수 있다. 아직 시간은 있으나 이를 여하히 활용할지는 전적으로 민주당 주류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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