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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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수염(털)이 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한때 인구에 회자한 적이 있다. 여의도 국회의원들을 지칭해 쓰던 말이다. 바로 철면피(鐵面皮). 두꺼운 무쇠로 된 얼굴 가죽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로 염치가 없고 은혜를 모르는 뻔뻔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어로도 놋쇠 얼굴, brazenface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는 쇠가죽을 철판에 비유한 면장우피(面張牛皮)가 있고 이보다 더 직설적인 말로는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있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는 표현이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4.10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들이 크고 작은 공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낙천자, 탈락자들의 반발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볼썽사납기가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무슨 대단한 재주와 능력을 가졌다고 3선, 4선, 5선을 하겠다고 우기는가. 의원직을 생계형 직업으로 추락시킨 것도 모자라 국회를 국민적 조롱과 비난의 대상으로 만든 장본인들이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밑천을 광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부터 들여다보자.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처음으로 몇몇 현역 의원들에 대한 공천배제 결정이 나오면서 대상자들이 단식농성에 나서는 등 당이 걷잡을 수 없는 ‘공천 파동’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심사 기준이 편향적이라는 반발로 당이 내홍에 빠진 상태다.

서울 마포갑의 노웅래 의원은 공천관리위원회가 자신의 지역구에 대해 전략선거구 지정을 요청하기로 의결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금품 관련 재판을 받는 게 저 혼자만이 아니다”라며 침낭까지 챙긴 뒤 당 대표실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나섰다.

판사 출신 초선인 이수진 의원도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지역구인 서울 동작을을 전략 선거구로 지정할 것을 요청하기로 의결하자 드세게 반발하면서 탈당을 선언했다. 이 의원은 “승리가 아닌 사욕과 비리, 모함으로 얼룩진 현재의 당 지도부 결정에 분노를 넘어 안타까움까지 느낀다. 민주당을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단순히 탈당만 한 게 아니다. 여권 및 검찰과 버거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백현동 판결을 보면서 이 대표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을 겨냥한 안팎의 비난 수위가 높아지자 “경쟁 과정에서는 본인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불평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께선 변화를 바라는데, 한번 선출된 분들은 스스로를 지켜 가고 싶어 한다”며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진통으로 생각해 달라”고 했다.

현역 물갈이가 상대적으로 적어 잡음이 덜하다는 국민의힘은 어떤가.

국민의힘은 현역 물갈이가 거의 없다 보니 공천을 둘러싼 파열음이 아직은 크게 들리지 않는다. 민주당 분위기에 비춰 보면 비교적 조용하고 순탄해 보인다. 하지만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출범 이래 기대했던 과감한 혁신이 보이지 않자 공천에 감동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현역 배려 공천을 두고 행여 의원들이 공천에서 탈락할 경우 개혁신당으로 옮겨가거나, 본회의 재표결 가능성이 있는 김건희 특검법안에 이탈표를 행사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민주당이 황당해하고 있다. 특검법 재처리 일정을 국민의힘 공천 이후로 미뤘던 전략이 국민의힘에 오히려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오늘의 책략이 내일의 악수가 됐다고나 할까. 정치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란 말이 실감난다. 물론 이 ‘감동 없는’ 국힘의 공천이 4.10 총선에서 유권자들로부터 어떤 심판을 받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당 공천에서 현역 물갈이는 그 당이 얼마나 개혁하고 쇄신하려 노력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지금은 민주당의 공천 파동으로 국힘의 ‘무소음’(無騷音) 공천이 반사이익을 얻는 듯하지만 옛 모습 그대로인 식단에 유권자들이 차가운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들도 나오고 있다.

물론 국민의힘에서도 공천잡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충남 예산⸱홍성의 4선 중진 홍문표 의원, 부산 사상의 송숙희 예비후보가 대표적으로 당의 결정에 반기를 들고 있다. 특히 송숙희 예비후보는 자신을 배제하고 김대식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을 단수 공천한 당의 결정에 반발해 삭발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단수공천 백지화를 요구하며 탈당까지 경고하고 있어 후폭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루소는 행복 중의 제일가는 행복은 권력(權力)이 아니라 자유(自由)라고 말했다. 공천 탈락자들에게 참고가 될 말이다. 사실 10년, 20년이면 분에 넘치고 족하다. 잠시 그동안 가졌던 것들을 내려놓고 한유(閑裕)한 숨을 쉬어 보는 건 어떨까.

“저도 8년 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눈시울을 붉히며 위로의 말을 전한 정청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공천탈락 후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그는 절치부심, 현재 야권의 실력자로 재기했다.

정치인은 경솔하게 남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비난이란 집비둘기와 같다. 집비둘기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온다.” (데일 카네기)

“꽃에 향기가 있듯 사람에겐 품격이 있다. 그런데 꽃이 싱싱할 때 향기가 신선하듯 사람도 마음이 맑을 때 품격이 고상하다. 썩은 백합은 잡초보다 오히려 그 냄새가 고약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밟히는데 가만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응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쏟아 내는 말들이 그들의 인격을 의심할 만큼 너무 저열하다. 특히 정치인들에겐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해야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분기탱천한 그들의 말을 듣다 보면 “떨어뜨릴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네”라는 말이 쉽게 나올만하다. 어떻게 자기만이 ‘적격’(適格)이라는 주장이 가능한가.

“충성을 다했는데 배신당했다. 보호하고 지키려고 애썼는데 뒤통수 맞았다”. “더러운 공천장을 받으려고 자존감마저 버렸다.”. 여기까진 그래도 좋다 치자.

“판결문을 보니 국민을 속이고 있다.” “돈 문제로 기소된 사람이 나만 있느냐”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걸고넘어지고 있다. “자신과 측근의 범죄를 비호하기 위해 민주당을 이용한 것 이외에 민주당의 국회의원으로서 국민과 민주당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나”는 비난에 이어 이 대표의 언행을 왜곡하는 오버도 이어졌다. “이 대표는 다면평가 0점을 받은 의원도 있다고 낄낄대며 동료 의원을 폄하하고 이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말끝에 보인 어색한 표정의 웃음을 두고 “낄낄대며 즐긴다”고 한 것은 누가 봐도 왜곡이다. 소위 ‘적군 진영’에서나 나올 법한 막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들의 속마음이 공천을 계기로 드러났다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전직을 팔아 자신의 언설에 권위와 정당성을 갖추자는 것인가. 말들을 아끼고 삼가야 한다.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의 정치도의(政治道義)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평소 그토록 비난하던 집단에 몸을 의탁하겠다고 고개를 기웃거리는 모습이 유권자들을 슬프게 한다. 그들이 외치던 정의나 소신, 지향은 무엇이었는가. 사리(私利)에 눈이 먼 나머지 공의(公義)를 모욕하는 그들의 모습에 측은지심이 일 정도다. 공천 희망자 모두에게 공천장을 쥐여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라고, 첫 가지가 다음 가지에 양보해야 큰 나무가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이 대표의 말도 나름 의미 있는 얘기다.

물론 여기서 이 대표가 잊어선 안 될 게 있다. 설사 자신을 구속시키는데 동의하고 당무에 ‘태클’을 걸어 온 비주류(非主流)라 하더라도 최대한 너그럽게 품는 금도(襟度)를 가지라는 것이다. 대업(大業)이 그리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던가. 항우의 품에 있던 한신이 유방의 사람이 된 고사가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겠다”는 말이 언제부턴가 유행하고 있다. 정치인보다는 비즈니스맨이나 군사 전략가들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말이다. 이 말은 그러나 조금만 곱씹어봐도 정치인들이 그렇게 애용할 말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인격을 이 말처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말이 어디 있겠는가. ‘깜’이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주제넘게 무슨 ‘모든 가능성’? 말들은 잘한다. 장관직에 국회의원 몇 선(選), 해 먹을 것 다 해 먹은 인사들이 뭘 더 바라고 울대에 힘을 주는지 안타깝다. 일반인들은 벌써 정년퇴직을 했거나 은퇴한 연조가 아닌가. 분수를 모르는 욕심과 집착, 세상인심이, 정치권 돌아가는 모양이 하도 한심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국회의원직은 생계(生計)형 평생직이 돼서는 안 된다. 4년마다 행해지는 정당의 공천작업은 성스럽게 존중돼야 할 국민적 과제수행이다. 신진대사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혁신이 하루가 멀다 하게 진행돼야 한다. 양자(量子)와 나노(nano) 시대라는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의 입법기관이 구각을 떨치지 못하고 답보 내지는 퇴행을 거듭한다면 그 공동체에 미래는 없다. 우리는 지금 경제발전 못지않게 정치발전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혁신과 쇄신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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