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금 민주당에서는 친문과 친명의 갈등이 격해지고 있다. 이른바 ‘문·명의 충돌’이라고 불리는 이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공천 갈등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기저에는 오랜 기간 지속돼 온 양측 간의 ‘감정의 골’이 존재한다. 이재명 대표는 본래 민주당의 비주류, 그것도 ‘찐 비주류’에 속한 인물이었다. 이 대표가 민주당의 비주류였을 당시, 이 대표는 주류인 친문 세력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다.

현재 진행형인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라고 불리는 사건 중 상당수가 문재인 정권 때 시작된 것임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또한 당시 주류인 친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른바 ‘문파’들 역시,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들을 맹공했었다. 당시 비주류에 대한 이런 공격은, 자유한국당에 대한 강성 친문의 공격 수준에 버금가는 정도였다. 당시 민주당 주류 핵심 관계자들은, 이런 강성 친문 지지층의 행동을 ‘양념’ 혹은 ‘에너지원(原)’이라며 옹호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과거의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됐고, 과거의 피해자는 현재의 가해자가 됐다. 여기서, 현재 강성 친명 지지층들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친명 강성 지지층만이 유독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런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친명의 친문에 대한 현재의 시각은 단순히 공천 갈등이라고 보기는 힘든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의 갈등에는 친명들의 ‘과거에 대한 기억’도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은 민주당만의 고유 현상은 아니다. 과거 한나라당 그리고 새누리당 시절에도, 친박과 친이 간의 갈등이 있었다. 이런 갈등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공천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공천 학살이라는 단어가 나돌 정도로, 당시 주류와 비주류 간의 갈등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당시 보수 정당의 상황도 현재 민주당의 상황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는 말이다.

이명박 정권 초기의 총선 즉, 18대 총선에서는 친박이 공천 학살을 당했고, 이명박 정권 말기에 치러진 19대 총선과 박근혜 정권 시절의 20대 총선에서는 친이계가 공천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았었다. 그렇다면 왜 현재 보수 정당, 즉 국민의힘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것일까? 그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기존의 보수 정당의 맥을 사실상 공중분해 시켰다. 친박의 핵심 인사들은 감옥에 갔고, 친이계는 보수 붕괴의 폐허 속에서 숨을 죽여야만 했다. 상황이 이러니, 계파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보수는 정권 획득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정권 획득의 주인공은 정통 보수 정치인이 아닌, 당 밖의 인사였던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국민의힘 상황은 새롭게 계파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계파라는 용어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계파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정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도 비정상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다양함 속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당 내의 계파는 독재를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영국이 바로 그런 사례다. 일반적으로 내각제 국가들은 대부분 다당제다. 그런데 영국은 내각제를 운영하지만 양당제 국가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내각제는 의회의 다수당이 행정부의 내각을 주도적으로 구성하는 시스템이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다당제 하에서 내각제를 운영하기 때문에,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연정(聯政)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영국처럼 양당제 국가에서 내각제를 실시하면, 둘 중 하나의 정당이 과반의 의석을 차지할 수밖에 없고, 이 정당이 행정부의 내각을 ‘단독’으로 구성하게 된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입법부를 지배하는 정당이 행정부마저도 지배하면, 아무래도 ‘독재’로 흐르기 쉽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영국이 독재로 흐르지 않는 이유는, 민주주의 전통이 뿌리 깊다는 정치 문화적 요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수당과 노동당 내부의 계파 덕분이다. 즉, 둘 중 하나의 정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그 정당 내부의 다른 계파가 해당 정권을 견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계파의 견제 덕분에 독단적인 정치 행위가 나타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파의 존재를 굳이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 정당 내부에 존재하는 계파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계파의 문제는, 계파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갈등 조정 기능이 없다는 데 있다. 갈등 조정 기능의 부재는 갈등이 투쟁으로 번졌을 때 무한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에서, 주류에 밀린 비주류들의 탈당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민주당에서는 탈당하는 인사들이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다. 현재와 같은 계파 갈등에서는 탈당 인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물론 국민의힘에서도 탈당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야당보다는 그 정도가 덜 심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당에는 대통령이라는 ‘실체적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민주당의 계파 갈등의 양상이 더욱 심각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만일 민주당을 탈당한 인사들이 속출한다면, 이제 막 탄생한 제3지대 연합정당, 즉 개혁 신당의 몸집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이번 총선은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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