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 있나”, “선거는 자선사업이 아니다”, “공약은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게 아니다”. 명분이고 뭐고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제를 택해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한 말이다. 기존의 연동형 비례제에 위성정당 방지책을 보완하는 선거제가 민주당의 공약이자 기존 당론이었다. 연동형보다는 병립형을 택했을 때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서를 접하면서 태도를 바꾼 것이다. 소수 정당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선거제도 개혁 차원에서 도입했던 제도를 다시 과거로 회귀시키는 퇴행이라고 성토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80여명의 현역 의원들이 병립형 회귀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 개인의 비례대표 후보 전략이라는 극단적인 추측까지 불렀다. 명분에서 밀리자, 민주당 지도부는 당원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원투표가 지도부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형식적인 민주 절차라는 것은 다 아는 바이다. 실제로 당 지도부가 명분 약한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책임 회피 전략으로 당원투표가 동원됐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자신이 비판해 오던 위성정당을 창당할 때, 귀책 사유가 있는 서울시·부산시 보궐선거에 후보 낼 때 그랬다. 이번 선거제 당원투표 회부를 두고도 지도부가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라는 비판이 당내에서도 나왔고, 유인태 전 의원은 히틀러가 국민 이름을 팔아 동원하던 파시즘이 바로 그런 거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여론 역풍에 눈치가 보였는지 2월 2일 최고위원회에서 결정하겠다고 하더니, 이재명 대표에게 일임했다. 비판과 의혹의 눈초리를 해소한 게 아니라,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던 이 대표 손으로 다시 넘긴 것이다.

사실 소선거구 중심의 우리 선거제에서 연동형이 제도적 정합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전체 의석의 1/6에도 못 미치는 정당비례대표 투표를 기준으로 전체의석을 배분하는 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이다. 우리가 모델로 빌려온 독일의 경우, 비례대표제 중심의 제도에 소선거구를 혼합한 것이다. 현재도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이 1대1이다. 우리는 소선거구 중심의 선거제다. 다만 소선거구제에서 거대 양당이 과도한 특혜를 누리면서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차별받고 배제되는 소수 정당, 신진세력에게 보상 차원에서 기회를 주는 제도로 양해할 수 있다. 정상적인 해법은 큰 정당에 엄청난 프리미엄을 주는 ‘기호순위제’ 같은 지역구 제도 내부의 불공정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고, 비례대표제의 확대나 중대선거구제를 검토해 보는 것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연동형을 도입했던 배경에는 양당 독과점체제에 대한 개혁 요구를 받아들인 측면도 있었지만, 연동형으로 가더라도 진영 전략으로는 크게 손해 볼 게 없다는 실리적 판단도 있었다. 연동형으로 민주당이 독과점체제의 기득권을 부분적으로 반납하더라도, 새롭게 진출할 만한 세력이 정의당 등의 우군이었기 때문이다. 공수처 설치 등 에서 소수당의 협력을 받기 위한 협상용 타협책이기도 했다. 물론 위성정당 태동으로 기대효과는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우군이 될 만한 소수세력이 없었다. 민주제도적 논거가 약하기도 했지만, 이런 현실적 이유 때문에 국민의힘은 연동형을 반대했다. 최근에는 병립형과 더불어 중대선거구제를 개혁 대안으로 꺼내기도 했으나 중요 의제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연동형을 도입했고 당론으로 보완책까지 발의했던 민주당이 다른 개혁 대안도 없이 병립형으로 선회한 것이다. 우군 전략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과반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권역별 비례 병립형을 절충안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비례대표 확대 없는 권역별 비례는 소수당에 더 불리하다. 이재명 대표의 방탄 전략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개혁이나 다당제 같은 멋진 소리가 무슨 소용이냐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공적인 역할을 기대하면서 국가보조금을 지원하고 여러 특혜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 무색하다. 민주화의 가치를 바탕으로 공적 명분을 구현하는 정당이 아니라 또 하나의 권력 카르텔임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쪽저쪽에서 비판이 제기되니 실리 차원에서도 부작용이 클지 모른다는 판단에 주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 주장에서부터 기본사회론에 이르기까지 각종 분야에 기본 이름을 붙이는 이재명 대표가 선거제에는 왜 기본을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만큼은 보장해 줘야 하는 기본소득처럼, 양당 독과점의 폐해를 극복하고 선거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원칙으로서 선거제 말이다. 하기야 이런저런 다짐과 공언을 부끄럼 없이 뒤엎어 버리는 정치 풍토에서 기본 품격까지 기대하는 게 무리한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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