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신속한 재판은 시민의 권리 중 하나이다. 미결된 상태로 장기간 구금되는 것을 막고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두고 일어나는 사회적 비난이나 심리적 불안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재판, 무죄추정의 원칙 등과 더불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근대 형사재판의 원칙이다. 우리 헌법에도 제27조③에 “모든 국민은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어지는 제27조④에서 규정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도 신속한 재판과 더불어 의미를 갖는다. 빨리 무죄를 증명해서 억울한 인권 침해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터인데,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면 기본권 침해다. 물론 형사 피고가 단죄되기를 바라는 경우라면 사법정의의 실현이 지체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재판을 맡았던 부장판사가 중도에 사직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잖아도 지연된 재판이 더 지연될 수밖에 없게 된 거다. 물론 선거법 법정 처리시한인 6개월을 지키지 못한 사례들이 흔하긴 하다, 임기가 끝나 가는데 국회의원 자격과 관련된 재판이 미결된 경우들도 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 제1당 대표의 선거법 재판인데다 강 판사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50명 이상의 증인이 채택된 재판이어서 법정 기한에 끝낼 수 없었다고 강 판사는 변명했다. 그럴수록 신속한 재판이 되도록 노력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재판을 질질 끌었던 판사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법정 기한 6개월 내내 준비기일 협의로 소진하고 본격적인 공판은 아예 못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담당 판사가 재판을 마무리하지 않고 도중에 사직을 해버리는 황당한 일을 벌인 것이다.

이런 걸 금지하도록 보강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소리에 공감이 간다. 반드시 지키도록 법 조문에 강제하고 있어도 지금처럼 안 지켜도 그만이다. 일반 국민들이 정해진 기한이나 절차법을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거나 벌금 등의 형사처벌을 받기도 한다. 입법부, 행정부 다 그렇다. 선거 1년 전 국회의원 지역구를 확정해야 하는데 아직 선거제도조차 미확정 상태다. 공직자들이 절차 규정을 어기면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 일반 국민보다 더 크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무죄를 주장하는 이재명 대표의 입장에서 엄청난 기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 언론이나 상당수의 여론이 이 혐의를 두고 이 대표를 논란의 도마에 올려놓고 있다. 이 사안뿐 아니다. 위증교사 혐의, 대장동 백현동 문제, 쌍방울 대북송금 대납 혐의 등도 다 그렇다.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돼 무죄를 증명하면, 이 대표의 정치활동도 날개를 달 텐데 말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기는 하다. 여당이나 상대 진영에서는 이재명 대표측이 오히려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처럼 공격한다. 이 대표의 정확한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재판을 지연시키려 한다는 여당의 공세가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그렇다보니 이 대표쪽에 무죄입증 주장과 유죄 판결에 대한 우려가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무죄에 대한 속마음과 전략에 따라 신속 재판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무죄 입증이든 유죄에 대한 우려이든 재판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헌법에 규정된 인권 보호의 원칙이다. 공동체의 질서와 정의를 위한 사법적 판단이라는 차원에서도 빨리 정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그렇다. 신속한 판결을 통해 가능한 빨리 무죄를 입증해 사법리스크 논란으로부터 벗어나 국책과 민생을 둘러싼 정치의 본령으로 되돌아오길 바란다. 혹시 유죄라면 빠른 사법적 결론을 통해 ‘사법의 정치화’ 족쇄로부터 벗어나야 할 터이다. 결국 헌법적 원칙으로서뿐 아니라, 현재 정치권의 사법적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관련 사안들에 대한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공정성과 투명성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이 동반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