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해가 바뀌어 새해다. 달력으로 따지지 않는다면 하루가 지난 오늘일 뿐이다. 그래도 세월의 흐름을 확인하는 분기점이다. 한해를 넘어온 뿌듯함도 있고 회한과 아쉬움도 있을 터이다. 새로운 시작을 독려하는 듯 연말에 하얀 눈이 가득 내렸다. 지난해를 돌아보게 된다.

근래 한해를 결산하는 단어들은 전부 아쉬움과 문제투성이를 지적하는 것들이었다. 교수신문에서 2023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내놨다. 각자의 이익만을 좇으며 도의가 실종된 세태를 지적한 것이다. 견리망의를 추천한 교수는 “정치란 본래 국민들을 ‘바르게(政=正) 다스려 이끈다’는 뜻인데 오늘의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정치 영역만이 아니라, 기업가, 학부모 등 우리 사회 각 영역에 팽배한 이기적 행태를 포괄하는 의미라고 했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라고 규정하는 사람도 있듯이 각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민낯의 이기적 행위만으론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다. 상대에 대한 공감과 역지사지가 발휘되어야 한다. 특히 공동체의 공의를 담당하는 정치는 이기적 권력욕만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나쁜 정치고 실패한 정치다.

공자는 군자의 덕목으로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말했다. 사사로운 이익을 접하게 되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우리에겐 안중근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쓴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유묵 구절과 더불어 익숙하다, 지난해 한국사회를 풍자한 견리망의는 그 정반대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물론 권력욕을 우선하는 자들이 권력투쟁에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적 권력욕을 추구하더라도 적어도 공적인 명분에 부합해야 한다. 또 그런 공적인 명분에 부합한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성이 좋은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는 가설도 있다. 내면을 보면 시커멓고 얼굴은 두껍다는 ‘후흑(厚黑)’으로 정치인의 특성을 정리한 사람도 있었다. 정치인들의 행태는 권력 의지와 공적인 대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오갈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정치리더십의 덕목으로 말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유연성과 타협의 정신을 발휘하되, 철학적 문제의식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에 기초한 문제의식과 유연성 모두 어려운 일이지만, 아주 공감하는 정치리더십의 원칙이다. 자신의 철학과 원칙을 강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칙없는 승리보다 차라리 ‘원칙있는 패배’를 택하겠다고 했다.

민낯의 권력투쟁이 지배하면 정치의 대의와 공공성은 실종된다. 요즘의 한국정치가 그렇다. 진영정치가 극단화되면서 진실도 가치도 진영 이익 앞에 무력화되고 있다. 또 한때 민주화의 가치에 헌신했던 세력이 그 명분이 실종되면서 민낯의 권력카르텔이 돼버렸다. 당대표는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는 말까지 노골적으로 하고, 민주진보 진영을 자임한다는 어떤 인사는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을 조기 퇴진시킬 수 있다는 반민주적 주장을 부끄럼 없이 하고 있다. 당장의 진영 권력이 모든 것에 앞선다. 민낯의 권력놀음만 남은 탈진실의 정치가 트럼프 시대 미국정치와 더불어 오늘의 한국정치에서 평행이론처럼 나타나고 있다.

매년 삶의 지침이 될 만한 내용을 붓글씨로 써 신년 연하장으로 보내주시는 어르신이 있다. 물처럼 세상을 이롭게 하며 다투지 말고 더러운 곳에서도 함께 하라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보내주시기도 하고, ‘근본이 확실히 서면 길은 저절로 생긴다(本立而道生)’는 문구를 보내주시기도 한다. 올해는 어떤 문구를 담으실지 궁금하다. 새해에는 여야를 비롯한 한국 정당정치 전반에 중대선거가 될 22대 총선이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불량정치의 공생이 혁파되는 전기가 되길 바란다. 이를 토대로 연말에는 긍정적인 사자성어로 2024년 올해를 정리라는 첫해가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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