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정치시사 방송에서 패널들의 표정과 태도는 어느 쪽이 불리한 상황인가를 대변해 준다. 악재가 불거졌거나 불리한 상황에 처한 쪽 패널들의 항변이 옹색해지고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억지를 쓰거나 무조건 큰 소리로 싸우듯 하는 패널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시청자들은 안다. 물론 진영 논리가 거의 모든 사회 영역을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보는 시각 자체가 아전인수일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상대방에게 밀리거나 동문서답으로 토론한 장면도 정신승리인지 추켜세우는 ‘짤’이 적지 않게 돌아다닌다. 객관적 판단이라는 게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이 말해주듯이 진영의 편싸움과는 다른 객관적인 판단들이 있다. 나름 시사방송도 진행해 왔던 나의 입장에서 패널들의 기세도 보인다. 이들의 태도와 기세를 통해 정세의 유불리를 그대로 읽게 된다.

종편방송의 등장과 더불어 정치시사 프로그램이 여야 성향 패널의 대담 또는 토론 방식으로 정형화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기존 지상파든 종편이든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시사 프로그램들이 그런 방식이다. 여야 진영별로 패널이 출연해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서로 토론한다. 다양한 견해를 공정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이기도 하고, 시청자들도 여야의 토론 방식을 선호한다는 얘기도 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여야 균형을 맞추어 공정성 논란을 피해 갈 수도 있다. 때로는 형식적으로는 균형을 맞추지만, 실질적으로는 편파적 패널 구성이라는 항변이나 지적도 나온다. 명목상으로는 어느 정파로 분류되지만, 최근의 정치적 성향이나 입장이 다른 경우들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참칭’ 패널을 정비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정당도 있었다.

그렇잖아도 진영정치 지긋지긋한데 방송까지 맨날 여의도 진영싸움을 재현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줘 시비곡직을 가리도록 하는 기대도 있겠으나, 너무 진영정치의 재생산 창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청자들 또한 양면적이다.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논평이 필요하다면서도 자신이 동조하는 입장이 많이 반영되기를 바란다. 알다시피 자신이 동조하는 입장에 대한 기대는 정파적 성향이 강한 유튜브 방송으로 몰린다. 인터넷에서도 네이버, 다음 같은 일반 포털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정파적 단합대회 장소인 커뮤니티를 정보획득과 자기 확증의 무대로 삼는다.

여ㆍ야 기계적 균형을 맞춘 패널 구성은 공정성 논란을 피하고자 하는 방송국의 편의주의와 시청자의 기대가 맞물린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대변인 등이 직접 출연하는 토론 프로도 필요하지만, 일상적인 시사 프로에 정당 대변을 넘어서는 중립적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각 정당의 논평을 그대로 재현하는 수준의 말싸움만 반복되다 보니 시청자 중에는 패널들의 수준을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하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있다. 또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정치의 사법화를 반영한 것인지, 변호사나 법조인 출신의 시사프로 패널들이 많다. 세월호참사 때의 유병언씨 추적,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공방과 전망, 검찰개혁 논란, 최근의 시법리스크 공방 등이 말해주듯이 한국정치 논쟁에서 법률적 사안들이 많았던 배경도 있다. 이를 토대로 법조 분야 전문가들이 정치 분야에 대한 전문 평론가로 이어져 활동하는 경우도 흔하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쟁화’라는 한국정치 현실이 시사프로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정치의 빈곤이라 할 만하다.

진영 싸움을 재현하는 시사방송 패널들의 기세와 표정에서 읽히는 정치상황을 말했다. 그런데 쟁점이 됐던 사안들이 대부분 호재보다 악재였다. 상대의 악재에 의존하고 있는 불량경쟁 정치 현실에 다름 아니다. 한때 호재처럼 보였던 국민의힘 혁신위가 막판 벽에 부딪히고, 황당한 결과로 드러난 부산엑스포 득표 전망 또한 여당에는 악재이다. 선거법 개정을 두고 자중지란인 민주당은 김용 전 부원장의 5년형 법정구속으로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다시 전면화되고 있다. 양 진영 패널들의 공세와 항변을 지켜보시라. 옹색하게 억지쓰는 쪽이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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