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지금의 한국 정치, 이것이 정치입니까? 나라를 망치는 망치일 뿐입니다”

준열하다 못해 섬찟하다. ‘특권폐지혁신당’ 창당주비위원회가 정치를 혁신하자며 내건 광고 문안의 한 줄이다. 영원한 야인으로 불려도 좋을 노정객 장기표 등이 주도하는 정당이 태동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선의를 가지고 귀를 기울여 보자.

이들은 나라의 모습을 우선 윤리와 도덕이 붕괴된 부패 공화국으로 진단한다. 정치가 망가진 데다 행정이 무능하고 사법기관이 정치화돼 무전유죄 유전무죄, 무권유죄 유권무죄가 일반화된 부패 공화국이 됐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이 특권 카르텔을 형성해 터무니없는 특권을 누리고 국민의 어려움은 안중에 없는,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의원은 연봉 1억5000만원에 후원금 최대 3억원, 의원실 지원금 5000만원 등 1년에 5억원 넘게 챙길 수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도장값’(변호인으로 이름 올리는 값)이 수천만원이고 보통 1년에 10억원 이상의 ‘전관 범죄’ 수익을 챙긴다. 이대로는 국민을 위한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들의 주장에 어떤 반론이 가능할까?

사실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개업하지 않고 대학교수가 됐다는 게 무슨 큰 덕목인 양 추앙받을 일인가? 비정상인 인지부조화가 아닌가.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런 사회, 이런 나라를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가. 도덕이 없고 철학이 없는 공동체, 기가 막히다. 모든 게 돈으로 카운트되고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하는 사회. 이러니 패륜이 판치고 천인공노할 잔혹범죄가 횡행하는 것 아닌가. 누가 누구를 존경하고 따른다는 말인가.

이들은 또 불법과 부패 내로남불과 적반하장 후안무치와 책임회피가 체질화된 사람들이 날이면 날마다 싸움질이나 하니 나라가 결딴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사생결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싸움,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정상배 정치를 이제 끝내야 한다고 외쳤다.

의사당 주변의 말만 많던 혁신과제들을 ‘특권폐지 혁신당’이 총선 이슈로 들고나왔다. 그들의 주장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등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여러 특권을 없애자. 의원들의 책임정치 구현 차원에서도 그렇고 법 앞에 만인 평등이라는 법치주의 실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 한국은 권위주의 무단정치가 행해지는 사회가 아니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새로 출범을 모색하는 창당 희망 집단에서 ‘혁신’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혁신’하겠다고 내건 아젠다들이 있지만 진정성과 실천의지가 없어 보인다. 다분히 대국민 분식용이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근본적이고 대대적인 정치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기득권 지키기와 당선자 늘리는 것만이 그들이 도달해야 할 고지는 아니다. 이들 양당이 현 시스템에 안주할 경우 무슨 봉변을 할지 알 수 없다.

실제로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든 아르헨티나 대선 결과가 예사롭지 않다. 방송 토론 프로그램 패널 출신으로 의정활동 2년이 정치 경력의 전부인 하비에르 밀레이(53)가 남미 대국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됐다. 민심이 기존 정치 문법을 완전히 거부하는 ‘아웃사이더’(outsider)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이다. 국가 혁신을 외치며 유세장에 전기톱까지 들고나왔던 밀레이 당선자의 외침이 그 나라에서만 어필될 현상일까?

기성 정치의 무능에 지친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은 ‘광인’(狂人)으로 불릴 만큼 과격한 언행으로 일관하는 밀레이가 아니면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그에게 표를 던졌다. 그들은 혁신이 아니라 혁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결과는 미국, 멕시코 등 내년 북미와 중남미 주요국에서 치러지는 대선 및 총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언론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게 꼭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될지는 알 수 없다. 경제에 파동이 있듯이 역사의 흐름에도 변곡이 있는 법이다. MZ세대의 정치 욕구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미국의 금융대란 이후 “월가를 점령하자”(Occupy Wall Street)고 외쳤던 ‘샐러리맨들의 반란’을 떠올리게 된다.

‘혁신당’의 등장은 우리 정치가 마주해야 할 ‘필연’(必然)이다. 이 역시 사회혁명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제까지의 기득권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세움으로써 공동체 가치체계의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것, 혁신이나 혁명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뒤틀린 사회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우리 정치권의 화두 역시 ‘혁신’이다. 여야 양대 정당은 이미 혁신위를 가동했거나 운영 중이다. 거기에 우후죽순 격으로 갖가지 혁신을 내세우며 정치결사를 도모하는 그룹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합집산이 있을 것이고 합종연횡도 보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양향자, 금태섭, 이준석의 신당 뉴스가 지상을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방편, 아니면 공천 플랫폼 정도로 치부될 그림들만 그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목소리도 높이고 채찍도 들어야 한다. 보기 싫다고 남의 일처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벌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외침이 새롭다.

물론 신당 움직임을 백안시할 이유는 없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까닭도 없다. 옥석을 가리는 건 유권자들 몫이다. 선거철의 ‘돌출’로 지레 의심하고 예단할 일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고 호응하면 그대로 의미를 갖게 된다. 세류(細流)가 모이면 장강(長江)이 되지 않던가.

이제 총선이 코앞이다. 여의도 의사당에 ‘분노의 물결’이 넘실대기 전에 여당 야당 국회의원들 정신 차려야 한다. 혁신(革新)을 못하면 다음은 혁명(革命)이 아니겠는가. ‘망치’와 ‘전기톱’이라는 단어가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