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지난 16일 민주당의 비주류 국회의원 4명이 ‘원칙과 상식’ 모임을 출범시켰다. “민주당의 무너진 원칙을 되살리고 국민이 원하는 상식의 정치를 세우겠다“며 비명계가 아니라 혁신계로 불러달라고 했다. 민주당 혁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또는 탈당의 전초작업이 될지 두고 볼 일이나, 상식을 화두로 던진 게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근래 들어 원칙, 공정 등과 더불어 상식이 이미 국정운영의 일상적인 화두가 돼버렸지만, 이번에는 정당 혁신의 명제로까지 등장했다.

원칙, 공정, 상식은 2012년 대선 때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캠페인 화두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으로 만들어 가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대선 공약집 제목으로 내세웠다. 이제 다시 야당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 그렇게 내세웠던 공정과 상식은 어디 갔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주로 집권세력이나 권력자를 비판하면서 시대적인 실천과제로 제기됐다. 불공정한 권력행사와 남용, 민심과 유리된 권력, 또 권력의 횡포 같은 권력의 속성, 권력자의 리더십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그런 만큼 여야가 바뀌면 ‘내로남불’ 논란의 단골 소재가 됐다.

원칙, 공정, 상식이라는 명제가 서로 맞물려 있긴 하지만, 공동체의 소통 기반인 상식의 위기가 일상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다. 극단적 진영정치와 유사종교화된 정치집단이 만들고 있는 최근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극단화된 진영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보편적인 상식은 뒷전에 밀리게 된다. 정치의 소용돌이 파장이 큰 한국사회의 과잉정치 현상에 인터넷과 SNS의 시대적 환경이 더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 무한정보는 집단지성의 창출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확증편향 강화라는 문제를 낳고 있다. 알다시피 유튜브 등의 정치시사 방송은 보편적 정보의 창구라기보다는 아군의 확증편향 근거를 강화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강경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 진영은 거의 유사 종교집단처럼 돼 있다. 진영 권력에 대한 비판은 신성모독처럼 간주하고, 이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테러위협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유사 종교집단에서 보듯 사회적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권력이권, 집단정체감이나 팬덤 등 다양한 동기에서 형성된 정치진영이 점차 동조화하면서 강화된다. 일시적인 권력투쟁의 도구로서 진영을 넘어서 점차 서로 다른 상식의 세계를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공유하는 상식이 파괴되면 공동체는 어려워진다.

민주공화국은 우리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 원리이다. 서로가 공유하는 기반이 있을 때 민주주의도 민주공화국도 가능하다. 상식은 서로 공감하고 공유하는 지식이자 가치판단이다. 이 상식이 무너지면 공동체는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상식과 유리된 정치권의 양상은 종종 있었지만, 최근 상황은 너무 심각하다. 극히 일부 정치세력이 아니라, 주류 정치세력에서 그런 양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민주당의 ‘혁신계’를 자임하는 ‘원칙과 상식’ 모임은 민주당에서 나타나고 있는 독선적 유사종교 집단화 경향에 대한 혁신 요구이기도 하다. 물론 당내 주류의 일부에서는 이들 모임과 주장을, 총선을 앞둔 권력투쟁 전략으로 보기도 한다. ‘혁신계’가 오히려 몰상식하다고 반박하는 그동안 양상이 재연되기도 한다. 권력투쟁의 정치현실에서 과연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파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있지만, 민주당에 대한 그들의 진단에는 공감한다.

민주주의는 상식적 여론과 상호작용하면서 작동한다. 그러나 이런 양극화된 진영정치가 주도하는 여론 지형에서는 민주주의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그나마 선거는 보편적 상식에 호소하게 만드는 민주주의의 계기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당파나 중도층에 호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영정치에 충실한 사람이 공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독과점의 정당정치 상황에서 이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오늘도 한국정치의 핵심 개혁과제는 양당 독과점의 특권 해소에 있다는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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