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이재명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면서 국민 항쟁을 선포했다.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는 단식의 변이다. 민생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과,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 입장 표명과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국정 쇄신과 개각, 이 세 가지를 윤 대통령이 수용할 때까지 무기한 단식하겠다고 했다.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강한 투쟁 의지로 읽을 수는 있겠다. 그래서 국민의힘이나 또 다른 쪽에서는 자신에 대한 사법적 압박과 당내 책임론에 대한 벼랑 끝 전술이라고 보기도 한다. 민주당 내부의 결집 효과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국민적 호응의 증가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갤럽 조사처럼 오히려 역풍이 불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진영정치 구도 그대로다. 정부여당은 민주당의 대여투쟁에 거짓 선동이라며 더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념대결론으로 번지면서 당분간 정국은 더욱 극단적 갈등 상황이 되는 게 분명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공산전체주의 맹동세력이 민주세력으로 위장해 국가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연일 비판하고 있다. 집권 초 윤 대통령은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이념이 아니라 민생’이라고 했다. 그런데 점차 전체주의 세력 비판이라는 반작용의 이념을 쟁점화하면서 또 다른 이념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3년 4.19 기념사, 4월 27일 미의회연설에서도 ‘거짓 선동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도처에 있다’며 민주주의 위장세력, 전체주의 세력을 비판했다. 8.15경축사에서도 반국가세력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 당원 워크숍, 민주평통 오찬모임, 국립외교원 60주년 행사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념 문제에 대한 성토를 이어가고 있다. 그 강도가 더 세지면서 야당 등에서는 이념전쟁이라는 용어로까지 규정하고 있다. NBS여론조사 등을 보면 최근 대통령의 이념투쟁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와 더불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에 악영향을 미치는 걸로 나온다.

서로 비판하면서 대결하고 있는 정치세력이 모두 상대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각기 다른 측면의 민주주의에 주목하고 있거나, 자신의 문제는 보지 않고 상대방만 지적하는 ‘내로남불’일 수 있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하면서 우리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양평고속도로 문제, 해병대 채상병 순직 수사 책임 논란, 방통위원장 임명 등 인사문제, 그리고 이재명 대표 자신의 수사 문제까지 권력 사유화, 폭력 정권의 국정농단이라고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 대통령과 여당에서는 국정농단이 아니라 오히려 야당이 거짓 선동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역공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입장이라면 일단 이런 문제들은 법적 판단과 국정조사 등으로 규명해야 한다. 단식으로 해결하거나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또 규명 대상이 아니라 그냥 성토와 비판거리에 그친 경우도 있다.

물론 제도적 규제를 넘어서는 권력의 비민주성이나 오남용의 여지는 항상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판 여론에 겸손하게 호응하는 편이 아니다. 단호함이 특성이다. 결단력과 일방주의의 양면성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일방주의적 경향은 부정적 평가가 압도하는 국정 지지도에서 가장 큰 부정적 요인으로 조사되고 있다. 민주당 등에서는 검찰 리더십이라고 비판한다. 사실 최고 권력이 스스로 절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제도화하고 있다. 입법부와 야당이 정권에 대한 견제 기능을 한다. 야당은 비판 여론을 정치적으로 매개한다. 현재 우리 야당은 이런 기능이 무력화돼 있다. 민주당이 압도적 여소야대를 주도하고 있음에도 국민 신뢰가 부족하니 민주적 통제력을 동원할 수 없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정부의 무능으로 국민들이 각자도생하고 있다 했지만, 민주주의 차원에서는 오히려 야당이 제 역할도 못 하면서 가로막고 있어 각자도생도 못 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 척도에서 권력자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중요한 요소다. 스트롱맨이 부각될수록 민주주의 수준은 낮게 평가된다.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추락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문제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정운영 방식은 성찰의 여지가 많다. 그런데 오히려 최근에는 더 악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물론 이재명 대표 또한 상대의 리더십을 두고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제1당이 이재명 대표 개인의 사법리스크에 1년 이상 올인 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사당화라는 비판을 항변하기 어렵다. 이 대표의 사법적 대응 조직이 돼버린 민주당의 사당화는 결국 지난 1년 한국의 정당정치, 한국의 대의정치를 사법 공방의 무대로 변질시켜 버렸다.

이코노미스트지 연구소(EIU)가 발표한 지난 2022년 각국의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8단계가 추락했다. 가장 큰 요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수년간의 대립적 정당 정치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큰 타격을 입혔다. 정치에 대한 마니교적(선악이분법) 해석은 합의와 타협을 위한 공간을 축소시켰고, 종종 정책 결정을 마비시켰다. 정치인들은 합의를 도출하고 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경쟁 정치인을 무너뜨리는 데 정치적 에너지를 집중한다. 이러한 대결 정치의 패턴은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의 정치문화 점수에 악영향을 미쳤으며, 대중은 점점 더 민주 정치에 매료되지 않고 공직자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선악 이분법의 진영정치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SNS를 매개로 유사 종교집단처럼 돼버린 극단의 진영정치는 우리가 보고 있는 바이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이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집권 세력이 이런 경향을 보이는 유사파시즘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개딸’을 기반으로 한 이재명 대표 체제 또한 이견을 신성모독처럼 간주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최근에는 거짓 선동에 의존한다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하지만, 반대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공격하는 윤석열 대통령도 그런 이분법적인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

극단적인 진영정치는 결국 국가권력이든 정당 권력이든 민주주의를 어렵게 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협을 말하는 당사자들의 성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문제나 이념 공방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도 야당의 거짓 선동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다. 대통령 자신의 소통과 포용의 결핍이 촉발한 면이 크다는 걸 자성해야 한다. 대통령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포용력과 반지성주의에 대한 경계를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강성 ‘개딸’에 의존하는 유사 종교적 진영정치에 대한 불신이 거대 야당의 견제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각성해야 한다.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성토하는 당사자 스스로가 우선 실천해야 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당면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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