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사법 리스크 공방이 우리 대의정치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민생이나 국가정책 의제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혐의를 둘러싼 공방이 우리 대의정치의 주요 관심사가 돼 버렸다. 지난 1년 정치뉴스, 시사토론 방송의 대부분도 사법 리스크에 대한 공세와 변론 마당이었다. 민주당의 윤석열 정부에 대한 공세도 이 사법 쟁점에 밀려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야당의 사법 리스크가 오히려 정부여당에 대한 방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생정치 의제의 실종과 야당의 견제 능력 약화가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한국 대의정치의 현주소다.

이재명 대표는 사법 리스크의 책임을 윤석열 정부에 돌린다. 정부의 무능과 정치 실패를 감추기 위해 이 대표를 희생제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혐의 자체에 대해서는 재판과 추가 수사가 진행 중이니만큼 유무죄를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이것의 정치화 문제이다. 이재명 대표의 이른바 대장동 의혹과 수사는 윤석열 정부 이전에 시작됐다. 수사 확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바였다.. 광범한 압수수색 공세라든가 전방위적 수사 방식은 검찰총장 출신 정부라는 특성을 느끼게 하는 점도 있다. 야당에서 정치적 수사, 정치 탄압이라고 항변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법 리스크를 대의정치 중심으로 끌고 온 것은 이재명 대표였다. 당직을 맡고 있다가도 개인적인 비리 의혹이 쟁점화되면, 당직을 내려놓거나 탈당하고 사법적 대응에 임했던 게 우리 정당정치의 상식적 관례였다. 그러나 이재명 당시 의원은 여러 의혹과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당 대표로 나섰다. 그 이전에 대선 패배 책임으로 당 대표가 사퇴한 지역구를 패배한 후보 당사자가 승계한 것도 아주 특이한 일이었다. 이를 토대로 다시 당 대표에 나선 건 예정된 순이었다. 당의 위험부담을 줄이는 상식적 관례와 정반대의 행보였다. ‘사법 리스크’라는 말이 이때 등장했다. 민주당이 이재명 개인의 문제를 당의 문제로 전면화시켜 부담을 안게 된다는 우려였다. 이런 우려에도 당시 전당대회에서 77.8%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민주당의 선택이었다.

이재명 대표는 이미 대선 당시에도 대통령이라는 방탄이 없는 한 사법 처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스스로가 “대선에 패배하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감옥에 보내질 것”이라고 했다. 인천 보궐선거에 나서서도 낙선하면 ‘끽’ 처단당할 것이라는 표현까지 했다. 대선에선 패배했지만, 다시 국회의원, 나아가 당 대표를 보호막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게 불가피한 보호막이냐, 개인의 방탄을 위해 민주당과 한국 정치를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 행위였느냐는 따져 보게 될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민주당과 한국 정치 모두에 아주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논쟁 중인 민주당의 혁신 문제도 사실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바탕에 있었다. 돈 봉투 사건, 코인 투자 등의 문제가 겹쳤지만, 근원적으로는 사법 리스크가 있었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안은 채로 다른 사법적 사안들을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알다시피 이런 문제들을 미봉한 채로 나온 혁신 해법은 혁신위원장 적임 논란에서부터 시작해 민주당에 혁신 효과를 보태기가 어려웠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덮으려는 희생제물이라는 이재명 대표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이 사법적 쟁점이 부각되면 될수록,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져야 한다. 독재정권 시기 민주화 운동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정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여전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대한 상대적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제1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국정 수행 지지도가 낮은 대통령의 방어막 역할을 해주고 있다. 사법 리스크의 볼모가 된 민주당이 이 대표에 대한 방탄을 넘어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방탄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권력은 스스로 겸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비판적 감시 역할을 하는 야당 역할이 중요하다. 야당이 신뢰를 받으면 정부는 비판 여론을 수용하게 돼 있다. 정부·여당이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야당 스스로가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혀 있으니 견제 기능을 못 한다. 야당의 견제 기능이 먹혀들지 않으니, 윤석열 대통령의 위태위태한 발언들도 거침없이 계속된다. 30-40%대 지지율에도 독주하는 ‘윤석열 정부’라는 경쟁적 대의민주주의의 실종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사법 리스크에 볼모 잡힌 민주당, 거대 야당의 무기력한 견제 기능, 민생정치의 의제 실종, 안타깝게도 21대 후반기 국회는 이대로 기록될 듯하다. 다만 차기 총선 일정이 가까워질수록 사법 리스크에 따른 한계는 더 첨예화될 것으로 보인다. 위기에 처한 민주당이 총선을 맞으면서 이 위기를 어떤 방식으로 돌파할 것인가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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