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지난 한 주 걱정거리가 참 많았다. 이곳저곳 도시 길거리, 백화점, 학교에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이어졌다. 위험스러운 모방 문자도 보태진 살인 예고 문자까지 번지며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다른 한편에선 자랑스러운 국제 행사로 홍보했던 새만금 잼버리대회, 오히려 국가 위신 실추 우려까지 낳았다. 영국 등 몇몇 국가 대표단이 자국의 청소년 보호를 위해 대회장에서 철수했다. 정부가 개입해 폭염에 대응하는 대회장 환경 개선에 나서고, 참가 153개국 중 150개국이 예정된 일정대로 치르기로 했다. 대회장 밖 체험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바꾼 모양이다. 이 와중에 어느 정당 혁신위원장의 황당 발언 행보는 그러잖아도 한심한 우리 정치권에 대한 염증을 무더위 속에 더하게 했다.

논란 속에 있던 민주당 혁신위원회는 조기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홈페이지와 각종 자료를 보니 공식 명칭이 위원장의 이름을 붙인 ‘김은경 혁신위원회’다. 그동안 각 정당의 비대위나 혁신위를 두고 언론 등에서 위원장 이름을 붙여 보도하기는 했으나, 공식적으로 위원장 이름을 건 혁신위는 처음인 것 같다. 정당정치 분야를 전공하는 전문가이거나, 정치권에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 아닌 인사를 혁신위원장으로 위촉한 것부터 생소하다. 상법과 보험법을 전공하고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역임한 법학자이다. 위원장 본인 말대로 ‘정치 언어를 모르고 정치적 맥락을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는’ 인사를 제1당의 위기 극복 혁신위원장으로 위촉한 건 특이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에서 아무런 논란이 없었다. 위원장으로 1차 위촉했다가 9시간 만에 사퇴한 이래경 위원장 파문 후유증을 조기에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적 요인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혁신위원회가 이재명 대표체제를 호위하는 조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배경에 있었다. 현행 체제를 지지하는 세력은 어느 쪽이든 그대로 지지했고, 이 대표체제의 혁신을 요구하는 세력은 특별히 기대할 것이 없다고 했다. 서로 다른 이유에서 아예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불체포특권 포기’ ‘꼼수탈당’ 등 제안된 혁신책에 대한 그동안의 미지근한 반응들이 말해준다.

사실 이재명 대표체제의 한계와 딜레마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현 지도부가 주도하는 혁신위원회가 대안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쇄신위원회, 개혁위원회 등의 이름으로 꾸려지기도 했던 혁신위원회는 당시의 당 지도부가 당 내외 전문가들로 구성한 개혁안을 만들 전문가팀이었다. 이재명 대표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이런 혁신위가 아니라 당 지도체제를 대체하는 비대위원회가 맞다. 혁신위를 가동해 당 위기를 극복해 보려고 했던 경우가 예전에도 있긴 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가 분당 위기 속에서 가동했던 ‘김상곤 혁신위’였다. 문재인 대표체제를 전제로 한 혁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당’으로 분당하고, 결국 ‘김종인 비대위’를 꾸려 선거를 치렀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바탕에 있는 민주당의 딜레마를 이재명 대표체제를 전제로 혁신위가 완화하기는 어려웠다. 출범한 지 1개월 반 정도 지난 김은경 혁신위는 혁신 효과보다는 새로운 혁신과제가 되고 말았다. 제안된 몇몇 혁신안은 유야무야됐고, 김은경 위원장의 부적절한 발언 시리즈는 계속됐다. 급기야 ‘여명 투표권’ 발언까지 낳았다. 발언 직후에는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를 강조하기 위한 예시였을 뿐, 노인 폄하가 아니었다는 해명으로 오히려 항변했다. 1인 1표의 민주주의 체제여서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여명투표 주장 자체는 ‘참 맞는 말’이라고 했다. 노인 폄하 여부를 떠나 대의민주주의와 참정권의 역사, 투표권의 의미를 몰각한 발언이었다. 결국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사과까지 하고, 윤석열 정부에서 금감원 부원장으로서 치렀다는 ‘치욕’과는 다른 차원의 치욕을 감당해야 했다. 물론 사진을 놓고 뺨때리기한 대한노인회장의 시대착오적, 반인권적 태도 또한 문제 삼을 만하다.

정치언어와 정치적 맥락에 대한 생각이 짧다고 자인한 인사를 또 다른 정치전략으로 동원한 ‘이재명 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는 또 다른 혁신 과제를 남긴 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부조리가 혁신위 파동에서 반복되는 것에 불과하다. 당 대표가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자리를 패배 후보 당사자가 승계하고, 나아가 새로운 당 대표가 돼 개인의 사법 리스크를 대한민국 제1당의 리스크로 전면화시키는 부조리도 안고 가는 민주당이다. 주말에 터진 혁신위원장의 가족 관련 개인사 논란의 진위 여부가 폭발성 큰 소재로 남아 있다.

37%, 35%, 32%, 23%. 7월 31~8월 2일 4개 여론조사기관 전국정치지표조사(NBS) 결과 나온 수치들이다. 우리 정치의 한심한 상황을 말해주는 지표다. 1001명 전화면접 조사.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 18.1%다. ‘무당층’ 또는 ‘모른다’가 37%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정치적 충성도가 강한 사람들이 여론조사에 더 많이 응답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 중도층, 무당층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양극화의 강경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 상황에 국민 다수는 유리돼 있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35%는 윤석열 대통령 국정지지도이다. 정당 지지도보다 조금 높기는 하지만, 부정 평가가 54%다. 등락이 있긴 하지만 집권 1달 지나고서부터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긍정보다 20% 정도 높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껴야 하나 그렇지 않다. 그냥 씩씩하다.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민에 답해야 한다. 그런 국민이 더 많다. 야당의 사법리스크와 저조한 지지를 방탄으로 삼는 듯하다. 대통령의 이번 여름휴가가 성찰의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본다.

32%는 ‘국민의 힘’ 지지도이고, 23%는 ’민주당‘ 지지도이다. 이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처참하다. 다른 ARS조사 등에서는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앞서는 지표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대안 야당으로서 기대를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사법리스크 등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충수가 되고 말았지만, 민주당이 혁신위를 가동한 배경이 말해준다. 무엇보다 제1야당의 자충수는 집권여당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책임이 크다.

서로 상대의 비극적 종말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 보니 모든 사회적 쟁점들을 상대방 죽이기의 정쟁거리로 만들려고 한다. 이미 정쟁거리가 되고 있는 새만금 잼버리 부실 문제도 상대 탓하기 공방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치가 직접적인 권력투쟁에만 동원되고 있다. 정치적 공방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정쟁이 압도한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도 참사도 그랬다. 경쟁을 통해 생산적 결과를 남기는 협치가 아니라,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협치가 요즘의 한국 정치다. 총선을 향한 경쟁이 이런 정국을 더 첨예화시킬지, 국민 심판을 염두에 둔 개혁 경쟁으로 문제를 푸는 계기가 될지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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