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인류 문명의 시작이라면 전기는 현대 문명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전력으로 공간과 시간, 자원 등을 기존 대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됐고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이어지면서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켰다. 오늘날 전기의 등장보다 혁신적인 변화가 관측되고 있는데, 바로 에너지 저장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배터리가 있다.

‘사물 인터넷(IoT)’ 개념을 차용해 바야흐로 ‘사물 배터리(BoT)’라는 말이 나온다. 이제는 배터리가 들어가지 않는 기기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우며, 전동 모빌리티가 달리는 시대다. 이를 가능케 한 주역은 일회용 배터리가 아니라 재충전이 가능한 2차 전지다.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2차 전지는 기기마다 요구되는 배터리 사용 시간과 용도, 사이즈가 달라 그 종류도 꽤 다양하다. 배터리는 모양에 따라 각형과 원통형, 파우치형으로 분류되는데 모두 장단점이 다르다. 특히 전기 자동차 시장의 본격 개화를 앞둔 시점에서 배터리 기업별 주력 제품과 전기차 업체들이 공급 받는 배터리가 상이한 만큼, 배터리 종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작지만 힘센 원통형 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배터리.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배터리. 사진=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하면 보통 AA 건전지를 떠올리는데, 바로 원통형 배터리다. 최초로 양산된 리튬 이온 배터리도 원통형이었으니, 역사가 가장 긴 2차 전지 형태라 하겠다.

원통형 배터리는 크기가 작아 주로 소형 정보 기술(IT) 기기에 들어가곤 했는데, 고용량과 고에너지라는 특징 때문에 순간적으로 높은 출력이 필요한 로봇 청소기·전동 공구·정원 공구 등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원통형 배터리의 또 다른 특징은 규격화된 사이즈다. 이는 큰 장점이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생산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원통형 배터리는 외관 구조상 여러 개를 묶어 팩으로 구성하는 경우 사이 사이 빈 공간 때문에 용량과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 “안전이 최고” 각형 배터리

삼성SDI의 각형 배터리와 전기 자동차 내 장착 구조. 사진=삼성SDI
삼성SDI의 각형 배터리와 전기 자동차 내 장착 구조. 사진=삼성SDI

알루미늄으로 둘러싸인 사각형 모양의 각형 배터리는 원통형과 비교해 두껍고 파우치형보다 외부 충격에 강한 게 특징이다.

전기차에 쓰이는 각형 배터리는 손바닥보다 큰 정도이나, 처음 등장했을 때는 훨씬 작았다. 각형 배터리는 휴대폰의 슬림화를 이끈 주역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핸드폰은 탈착식 니켈 수소 배터리 장착으로 벽돌폰이라 불릴 만큼 컸으나, 각형 배터리가 적용되면서 가볍고 얇아질 수 있었다. 배터리 기술 발전으로 각형 배터리는 슬림 노트북에 탑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슬림한 디자인의 스마트 기기가 나오면서 각형 배터리의 인기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모양과 크기를 자유롭게 선택 가능한 배터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인기는 파우치형 배터리에 넘어갔다.

최근 각형 배터리는 전기차용으로 각광 받으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전기차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만큼, 구조적 안전성이 높고 열 방출이 잘 되는 각형 배터리가 선호되고 있는 것이다.

또 각형 배터리는 내부 가스를 배출하는 벤트나 특정 전류가 흐를 때 회로를 끊어 버리는 퓨즈 같은 각종 안전 장치가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향후 배터리의 묶음 형태인 모듈과 팩이 없어지고 전기차에 바로 배터리를 장착하는 ‘CTC(Cell to Car·Chassis)’가 구현되면, 안전성이 높은 각형 배터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분석된다.

◆ 크기와 용량이 자유자재…유연한 파우치형 배터리

SK온의 파우치형 ‘SF(Super Fast)’ 배터리. 사진=SK온
SK온의 파우치형 ‘SF(Super Fast)’ 배터리. 사진=SK온

파우치형 배터리는 각형이나 원통형의 금속 외장과 달리, 과자 봉지처럼 맨들맨들하고 얇은 필름 소재로 싸인 외관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외관 소재의 특성에 따라 넓고 얇은 배터리를 만들 수 있어,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기 쉬운 게 파우치형 배터리의 장점이다. 뿐만 아니라 파우치형 배터리는 공간 효율이 좋아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도 있다.

파우치형 배터리는 비교적 가볍고 용량과 크기를 용이하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슬림한 IT 기기에 우선 순위로 채택되고 있다. 실제 파우치형 배터리가 들어가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이 기존 두께의 한계를 극복하며 판매가 대폭 늘어났다.

파우치형 배터리는 최근 전기차에도 탑재되면서, 활용 분야가 점점 다양화될 전망이다. 다만 외관이 단단하지 않고 외부 충격에 약한 점이 이 배터리의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파우치형 배터리 경우 IT 기기에는 보통 10개 미만으로 들어가는 반면 전기차에는 수백 개가 사용되는데, 이를 위해 모듈 또는 팩으로 제작 시 기술적 보완이 필요해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파이낸셜투데이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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