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막 파손시 가스 및 열폭주 현상 발생…연쇄 폭발
물과 만나면 수소 기체 생성, 산소 만나면 불꽃 없어도 발화
금속화재 및 D급 소화기 매뉴얼 없어…윤 대통령 “대책 마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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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의 한 배터리 제조 공장에서 불이 나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관들의 내부 진입과 수색을 지연시킨 ‘리튬 배터리 화재’의 위험성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소방당국은 지난 24일 오전 10시 30분쯤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단에 위치한 아리셀의 리튬 일차전지 제조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불이 난 곳은 11개동 가운데 2층짜리 3동 공장 2층. 1층 노동자들은 즉시 대피했지만, 2층에 있던 직원들 다수는 미처 피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은 즉각 현장에 도착했으나, 물을 이용한 진화에 적극 나서지 못했고, 공장 내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와 수색이 지연됐다.

소방 대응이 어려웠던 이유는 ‘리튬 일차전지 화재’였기 때문이다. 수명이 길고 에너지 밀도가 높아 최근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는 리튬 이온 전지는 일차전지와 이차전지로 나뉜다.

일차전지는 에너지 밀도와 전압이 높고 수명이 길지만 한번 방전되면 충전해서 다시 쓸 수 없다. 스마트그리드 계량기, 무전기 등 군수용품, 통신 장비, 전자태그(RFID) 장치, 의료기기 등이 많이 쓰인다. 이차전지는 재사용이 가능해 전기차, 스마트폰, 노트북,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 주로 활용된다.

리튬 이온 전지는 크게 음극재, 양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전지 속 리튬 이온이 양극재와 음극재 사이를 액체로 된 전해질을 타고 이동하면서 화학적 반응을 일을켜 전기를 만든다. 리튬 이온은 분리막의 아주 작은 구멍을 통해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동하면서 충전하고, 다시 양극으로 돌아가면 방전되면서 전기 에너지를 낸다. 분리막의 아주 작은 구멍은 양극재와 음극재가 통과할 수 없다.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재와 음극재가 만나면서 열이 나고 화재와 폭발로 이어진다. 화학 반응이 커지면 순식간에 1000도 넘게 온도가 치솟을 수 있다. 업계에서 ‘열폭주’라고 하는 현상이다. ‘열폭주 현상’이 발생하면 주변 배터리로 불이 옮겨 붙고 연속적으로 열폭주가 이어지게 된다. 리튬배터리 화재가 쉽게 잡히지 않는 이유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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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배터리 화재 진화가 힘든 이유는 또 있다. 리튬의 특성 때문이다.

리튬은 주기율표에서 1족에 속하는 알칼리 금속으로, 가장 가벼운 금속 중 하나이며, 높은 전기화학적 전위를 가지고 있어 에너지 저장 밀도가 높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리튬은 배터리 같은 휴대용 전자기기에서 널리 쓰인다.

문제는 높은 반응성에 있다. 나트륨이나 칼륨 등 다른 알칼리 금속들과 마찬가지로 물과 접촉할 때 격렬한 반응을 일으킨다. 리튬이 물과 만나면 수산화 리튬과 수소 기체가 생성된다. 매우 낮은 점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수소 기체는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면 폭발할 수 있다. 리튬 화재에 물을 뿌리면 큰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리튬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금속 화재에 적응성이 있는 전용 소화 약제를 사용하거나 마른 모래, 팽창질석, 팽창 진주암 등을 이용해 진화해야 한다.

리튬과 같은 가연성 금속이 연소하는 화재인 금속화재는 D급화재로 불린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금속화재가 화재 유형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소방청 고시인 ‘소화기구 및 자동소화장치의 화재안전기준’상 화재 종류에는 일반화재(A급화재), 유류화재(B급화재), 전기화재(C급화재), 주방화재(K급화재) 등만 정의되어 있을 뿐 ‘금속화재’는 정의돼 있지 않다.

D급 소화기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D급 소화기에 대한 품질 검증이 미흡한 상황이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 화재 현장. 사진=연합뉴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 화재 현장. 사진=연합뉴스

전날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기존 소화기나 소화전으로 진화가 어려운 화재에 대해 대체 진화 수단을 마련하고 ▲화학물질 취급 공장에 대해 건물구조 및 적재방법과 위치를 고려한 화재예방 방법을 강구하며 ▲공장 성격에 따른 유형별 화재시 대피요령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행안부, 국토부, 산업부 등 9개 부처가 참여하는 관계부처 합동 TF를 구성하여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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