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개봉작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리뷰》

안보실 행정관 정원이선균 분은 유학길에 나선 딸 경민김수안 분을 배웅하기 위해 짙은 안개를 뚫고 공항으로 향하던 중, 다리 위 최악의 연쇄 추돌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은 레커차 기사 조박주지훈 분, 군사용 실험견을 극비리에 이송 중이던 양 박사김희원 분 등 모두가 공항대교 한복판에 발이 묶인 상황. 다리에의 모든 출입이 전면 통제된 가운데 통신까지 끊긴 완벽한 고립 속에서, 헬기 추락과 유독 가스 폭발 등 연이어 재난이 이어지며 바다 한가운데 공항대교는 붕괴 위기에 놓인다. 설상가상으로 케이지에서 탈출한 ‘프로젝트 사일런스’ 실험견이 눈앞 생존자를 표적으로 인식하면서 예측 불가능한 공격을 시작하는데⋯.

김태곤 / 한국 / 95분 46초 / 8일 언론배급시사회 / CGV 용산아이파크몰

영화를 영화로만 평가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작품과 별개인 어떤 상념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잔존하는 것이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를 보면서는 자꾸 배우 고 이선균이 떠오른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행정관 역을 맡은 이선균. 더는 세상에 없는 그가, 스크린에서만은 아직 생생히 살아 숨 쉰다. 극 중 정원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 고인의 귀환에 전율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렇듯 시작은 온전한 평가가 어려운 영화다. 하지만 이런 감상주의는 초중반 급격한 반전을 맞는다. 바다에 자욱이 낀 안개로 공항대교에서 100중 추돌이 일어나면서부터다. 그 사고의 순간이 실제처럼 선명해 차가 부딪힐 때마다 몸을 움찔움찔하기에 바쁘다. 자동차 사고 다음은 사나운 군견의 습격. 진짜는 아니고 진짜 같은 가짜다. 덱스터스튜디오가 만든 컴퓨터생성화상CGI은 밤중이라는 시간대에 힘입어 극도로 현실적인 모습으로 극에 몰입감을 부여한다.

대체 군견은 누구의 명령으로 만들어졌을까? 생존자들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모든 의문은 재난물의 클리셰를 무엇 하나 비껴가지 않고 그 예상대로 고스란히 진행된다. 그렇기에 군견도, 다리도, 모두 수단에 불과하다. 이 영화의 목적은 두 피조물의 대비와, 못됐지만 끝내 정의롭게 변하는 한 인간의 목격이다. 인간이 창조한 죽음의 피조물인 군견과 정원의 피조물인 경민. 하나는 사람을 죽이고 다른 하나는 인명 경시를 나무라며 세상에 자비를 베푼다.

다음이 예측될 수는 있어도, 이와 별개로 몰입도는 최고 수준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안개는 그로 인한 탁한 시야가 이 영화만의 음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기생충’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홍경표 촬영감독이 빚은 마법 같은 화면이다. 한아름 미술감독이 바닥에 실제 아스팔트를 포장하면서까지 구현한 1300평 규모 세트장도 실재감을 더한다. 난간에 핀 잡초 한 포기까지 신경 썼다는 것이 김 감독의 설명.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공개 후 최종 완성본에서는 총 6분여를 드러낸 그의 절치부심도 극의 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선균, 주지훈, 김희원인데 연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주지훈의 ‘양아치’ 캐릭터는 그 기능적 역할이 영화 ‘비공식작전’에서 이미 봤던 모습이다.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모습이 참 잘 어울린다. 마냥 유쾌하다. 김희원은 영화의 수훈 갑인데, 전형적인 미치광이 과학자 역할이면서 혹시 군견에 물려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초조를 섬세히 표현했다. 미친 사람인데 적어도 시시비비는 가릴 줄 아는 ‘미친놈’이기에 보는 동안 속이 답답한 일은 없다.

이 영화가 이선균의 대표작 내지 최고작이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본인의 연기력을 더 펼칠 여지가 없었다는 말이 맞겠다. 유작이라고 아닌 것을 반대로 맞다고 하는 것만큼 보기에 나쁜 것도 없다. 그렇지만, 그래서 여기서 이 영화의 강점이 한 가지 더 발생한다. 영화가 종반부로 접어들면서 스크린 안에는 인간 이선균은 없다. 계속해 생각나던 상념도 어느새 지워지고 없다. ‘이 영화는 이선균의 유작’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관객은 점차 정의로운 아버지로 변모하는 정원의 모습과, 그를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의 탈출기에 정신없이 몰입할 뿐이다. 비로소 영화를 영화로만 평가하는 것이 가능해진 순간이며, 그렇게 마침내 이선균은 정원이 된다. 고 이선균을 배우 이선균으로 기억되게 하는 잘 만든 팝콘영화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