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요사이 정치권을 보면, 정치는 정말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뿐만이 아니라,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상황도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개헌’ 문제다.

민주당은 현재 ‘대통령 4년 중임제“ 혹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제한’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동시다발적인 개헌 주장이 ‘특이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개헌’ 주장이 나오는 시기가, 정권 말기 혹은 대선 때이기 때문이다.

정권 말기에 개헌론이 등장하는 이유는, 정권 말기의 저조한 대통령 지지율 때문이다. 즉, 저조한 지지율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여론의 환기가 필요한데, 개헌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개헌론’이 등장하면, 다른 정치 쟁점들은 개헌이라는 ‘블랙홀’에 모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을 저조하게 만드는 다양한 레임덕 증상들도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조금은 수월해진다. 이런 이유에서, 임기 말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개헌을 들고나오는 것이다.

대선에서 개헌론을 들고나오는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대선에서 2등을 하는 후보가 공약으로 개헌을 들고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개헌론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덮고, 동시에 자신에 대한 주목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개헌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다른 이슈들을 모두 빨아들이기 때문에, 개헌은 정치적으로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종 등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정권 말기도 아니고 대선 시즌도 아니다. 그럼에도 개헌이 정치판에 등장하고 있으니, ‘특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특이한 상황이 전개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들 수 있는 이유는, 현재 대통령 지지율이 매우 저조하다는 점이다. 지난 16일 발표된 전국 지표조사(NBS·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 응답률은 17.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직전 조사 대비 1%p 오른 28%를 기록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도무지 2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의 지지율은 임기 5년 차에서나 볼 수 있는 지지율이다. 상황이 이러니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개헌론 주장을 통해 대통령을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두 번째의 이유가 나온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개헌론의 종착점은 바로 임기 단축이다. 예를 들어 4년 중임제 개헌을 추진하게 되면, 현재 대통령의 임기는 자연스럽게 단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민주당의 이런 주장에는 논리적 모순이 존재한다. 대통령제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 중의 하나는 임기제인데, 4년 중임의 대통령제로 바꾸자면서, 대통령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임기제를 흔드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민주당 역시 이런 모순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모순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사안 중 일부는 재판 중에 있고, 일부는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재판 중인 사안 일부는, 최종 판결이 비교적 이른 시일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대선 전에 일부 사안이라도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이 대표의 대선 도전은 막힐 수 있다. 이런 상황 발생에 대비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식은,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는 것이다.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 대선을 치르는 것이 최선의 대비책이라는 말이다. 대통령 임기를 줄이는 방식은, 탄핵과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이 있는데, 탄핵은 여러모로 쉽지 않으니,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탄핵이 쉽지 않은 이유는 이렇다. 특검이든, 검찰 수사든 해병대원의 순직 사건 수사 결과가 나오고, 일정 부분 대통령실과의 연관성이 증명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를 고리로 탄핵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도 법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이런 이유를 민주당도 알고 있기에, 대통령 임기 단축의 유일한 수단으로 개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5.18 기념식 때, 광주 민주항쟁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 대통령이 왜 한마디 말도 없었느냐는 주장이 민주당으로부터 나왔는데, 이것 역시 개헌을 염두에 둔 주장이다. 헌법 전문 수록의 다른 표현은 바로 개헌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은, 단순히 대통령을 흔들기 위한 수단으로 개헌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민주당이 주장하는 개헌을 그냥 보아넘기기는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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