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세사기? 기자도 당한다

지난해 12월 5일 오후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대책위)와 지역 피해자들 220여명이 대전 서구 대전시청 잔디광장에서 정부의 과실 인정 요구와 배상을 촉구하며 정부와 대전시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할까봐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했다고 해도, 안심하긴 이르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아주 험난한(?) 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임대차 해지 통보’하려고 우체국, 주민센터, 법원 수시로 들락달락

집주인이 임대차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받으면 HUG 보증금 반환과정은 쉽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보통 집주인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집주인들은 서류상 주소지에 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 경우도 그랬다.

지난해 4월경 내용증명을 보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반송됐다. ‘호수불명’이 반송 이유였다. 내용증명이 반송되면 임대차계약서와 전 집주인이 현 집주인에게 판매했다는 매매계약서 등을 들고 주민센터를 방문해 임대인의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아야 한다. 그리고 주민등록초본상 임대인의 현주소로 다시 내용증명을 보내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또 반송되는 경우 의사표시공시송달을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내 경우에는 임대인의 초본상 주소가 1차로 보낸 내용증명 주소와 같은 게 문제였다. 전세계약 기간이 꽤 남았기 때문에 임대차계약 해지를 그때 바로 공시송달 해도 되는지 의문이 있어 차일피일 미루다 다시 내용증명을 보내는 지난한 과정을 밟았다. 이후 다시 초본을 떼보니 거주불명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부터는 정말로 ‘멘탈 붕괴(멘붕)’가 일어났다. 도대체 ‘거주불명자’면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HUG에 전화상담을 해도 보증이행 청구 절차만 안내해줄 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HUG에 상담을 받기 위해 전화도 수차례, 30분씩 대기하기도 했지만 ‘시간 내에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안내만 받았다.

이후 어렵게 공시송달까지 신청한 후 2주 정도 지나 법원은 주소보정명령을 보냈다. 법원의 명령은 확인 후 일주일 안에 처리를 해야 한다. 아니면 취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법원의 주소보정명령서를 들고 또 다시 주민센터를 찾았다. 법원의 주소보정명령서를 가져가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주소가 기재된 초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2차 멘붕이 왔다. 집주인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곳으로 전입신고를 해놨는데, 그 주소지가 내가 공시송달을 신청한 법원 관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관할 법원이 다르면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아는 변호사님의 조언을 받아 공시송달 신청을 취하하고 다시 해당 주소지 관할 법원에 공시송달을 신청했다. 다시 주소보정명령서를 받았는데 정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다 정신을 부여잡으니 다시 해당 주소로 내용증명을 보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용증명을 다시 보냈고 집주인의 아버지가 대신 수령해 겨우 ‘임대차 계약 해지 통보’를 할 수 있었다.

◆ 모두 임차인이 책임지게 만든 HUG 보증보험...이러니 ‘분노’할 수밖에

“전세사기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가 지난 3월 20일, 최근 발생한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상대로 전세사기 대응 설명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가 지난 3월 20일, 최근 발생한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상대로 전세사기 대응 설명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은 스포츠에서만 쓸 말이 아니라 HUG 보증이행 청구 절차에서 써야하는 말이다. 

내용증명, 공시송달 절차를 거쳐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면, 임차권 등기를 신청해야 한다. 은행에서 대출을 했다면 은행에 방문해 계약도 연장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HUG가 사실상 전세 세입자들의 피해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HUG는 마치 ‘간단한’ 것처럼 ‘내용증명을 보내고 공시송달까지 완료하라’고 안내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알아내는 건 보증금 떼인 임차인이 해야할 일이다. 이 과정에서 법률 용어 등을 공부하고 법원에 방문하는 등의 수고를 거쳐야 한다. 고령의 피해자들은 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또, 모든 과정에 ‘돈’이 들어간다. 내용증명, 공시송달 모든 절차에서 자잘한 수수료가 든다. 뿐만 아니다. 평일에 일하는 직장인인 경우, 연차도 소진해야 한다. 시간과 돈이 동시에 날라가는 셈이다. 

HUG에 보증금을 청구하기 위해 가야하는 곳도 너무 많다. 우체국, 주민센터, 은행은 수시로 갈 수밖에 없고 인터넷으로 하는 걸 모르면 법원을 방문해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상담을 받고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정말로 모르겠다면 변호사나 법무사를 선임해야 할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있었다. 나는 해당 블로그 글을 통해 내용증명부터 공시송달, 임차권 등기 설정 등 혼자 감당해야하는 모든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세사기 피해자를 도와주는 사람은 고작 홍보글만 올려놓는 법조인보다도 같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었다. 

◆ 아직도 ‘전혀’ 개선된 게 없는 HUG  보증이행 청구 절차

지난 1월 3일 당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주택도시보증공사 서울서부관리센터에서 열린 전세사기 관련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3일 당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주택도시보증공사 서울서부관리센터에서 열린 전세사기 관련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보증이행 청구 절차 자체가 너무 복잡하다는 지적에 당시 국토교통부는 “법원, 법무부 등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대위변제에 필요한 절차를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HUG 보증이행 절차는 아직도 전혀 개선된 게 없다. 여기에 더해 HUG에 가입한 사람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특히 HUG는 임대인이 몇달째 연락두절 상태라고 수차례 문자, 전화 등의 내역을 근거 자료로 제출해도 ‘보증사고’로 보지 않는다. HUG에서 보증사고란, 임대차 계약 해지를 계약 만료 2개월 전에 통보했지만 계약기간이 끝난 뒤 1개월이 지나도록 보증금을 받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내 개인적인 기준이지만, 정상적인 전세계약이 체결됐다면 ▲집주인이 연락이 돼야 하고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의를 통해 임대차 계약을 종료할 수 있고 ▲집을 나갈 때 보증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게 틀어져도 계약기간이 지나고 한달이 더 지나기 전까진 보증사고가 아니라고 보는 것은, 결국 HUG가 임차인이 아니라 임대인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HUG가 ‘임대인이 계약기간이 지나서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임차인만 피말리는 제도를 설계했을 리가 없다.

HUG에 가입하지 못한 피해자도 국토교통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상미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장은 지난 28일 현재 국민의힘 소속으로 인천 계양을에서 출마한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에 대해 “국토부 장관을 맡을 땐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면담요구는 거부하고 생색내기용 대책만 반복했다”며 “원 후보는 피해자에게 많은 지원을 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로 피해자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지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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