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병립형이란, 선거에서 지역구 의석을 얼마나 획득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비례대표를 위해 배정된 47석의 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을 말한다. 연동형은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을 같이 연계시키는 제도로, 정당 투표를 기준으로 정당 투표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이 많으면 비례대표 의석을 그만큼 줄이고, 반대로 정당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이 적으면, 적은 만큼 비례대표를 늘려주는 방식을 의미한다. 21대 총선에서 실시됐던 준연동형은,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은 연동형으로 분배하고, 나머지 17석은 병립형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연동형 그러니까 비례대표 의석 47석 전체를 연동형으로 배분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연동형으로 하든, 준연동형으로 하든 이런 선거제도의 변화는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위성정당 출현을 과연 방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얼핏 생각하면, 법을 만들면 위성정당 출현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송영길 전 대표, 혹은 조국 전 장관이 신당을 창당하거나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이런 정당들을 위성정당이라고 볼 수 있느냐 하는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이들이 특정 정당에서 당 대표를 지냈거나, 당적은 보유하지 않았지만, 민주당 인사로 보는 유권자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신당이 모(母) 정당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니까, 위성정당은 아니라는 논리가 얼마든지 성립될 수 있다. 또한, 만일 이들이 ‘비례 전문 정당’을 창당하고 일정 수준의 비례 의석을 확보한 이후, 다시금 숙주 정당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으니 이는 위성정당이고, 그래서 정당을 만들면 안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자유에 반하는 주장이다. 가능성이 있으니, 정당을 만들지 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런 신당 창당 움직임을 제도적으로 금지한다면, 이는 헌법 위반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만일 이들의 신당이 모(母)정당과 합치지는 않지만, 연합해서 움직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연동형 제도의 취지를 위반한 것이지만, 이를 금지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연동형을 주장하는 이들이 항상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다양한 정당이 국회에 진입하도록 만들어, 다양한 목소리가 제도에 반영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100%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 신당이, 민주당 혹은 국민의힘과 연합해서 대부분 동일한 목소리를 낸다면, 연동형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을 거스르는 결과가 된다. 지금의 정의당을 보더라도 그렇다. 정의당은 상당 부분 민주당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번 방통위원장 내정자가 임명되기도 전에 정의당에서 탄핵 주장이 나오는 것을 봐도, 거대 정당과 호흡을 맞추는 군소정당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양한 목소리의 제도 반영’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만일 연동형으로 선거를 치러 몇몇 군소정당이 원내로 진입하고, 문자 그대로 ‘다양한 목소리’를 낸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들의 목소리가 국회에 제대로 반영될 것인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21대 국회를 볼 때, 22대 국회에서 군소정당이 국회로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결코 군소정당이라고 할 수 없는 여당의 의견마저도 무시하며 상당수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런 정치 문화가 지배하는 국회가 갑자기 군소정당이 의회에 진입했다고 이들의 목소리를 제도에 반영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21대 국회에서 군소정당으로 국회에 진입했던 정당들, 예를 들어 ‘시대 전환’이나 ‘기본 소득당’ 등을 보더라도, 이들의 목소리가 제도에 반영됐는지 지극히 의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세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문제점은, 과연 선거제도 개혁 운운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인가, 또 국민들이 이런 문제를 자신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민주당 소속 정개 특위의 모 의원은 “국민들은 그 산식을 알 필요가 없다”라며 “국민들은 정당과 지역 의원들에게만 투표하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해 막말 논란이 발생한 적이 있다. 그 의원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곱씹어 볼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청년 비하나 노인 비하와는 차원이 다른 말이라는 것이다. 해당 의원 말의 핵심은 “연동형 비례제를 실시할 경우, 의석 배분을 계산하는 방식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실제 독일에서 실시했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의석을 계산하는 방식은 두 개나 있을 정도로 매우 복잡했다. 더구나 독일은 총선 때마다 의석이 100석이 늘어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예를 들어 500석인 국회의 의석이 600개로 늘어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일은 이런 복잡함과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를 2023년 개정했다. 이제는 의석을 630석으로 고정한 것이다.

이런 정도로 복잡한 것이 연동형인데, 이를 두고 정치권이 줄다리기하는 모습은, 유권자의 눈에는 ‘그들만의 싸움’으로 비쳐질 뿐이다. 만일 정치권 일부가, 이것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계몽을 통해 국민들에게 무슨 이익되는지를 설명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정치란, ‘느끼게’ 만들어야지, 설명해서 이해하게끔 만드는 존재는 아니다. 정치를 설명하는 순간 정치는 사라진다. ‘계몽주의적 정치’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필자 역시 다당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국가 중 다당제인 국가는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유력 대선 후보가 없는 정당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통령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하에서 유권자는, 총선에서 투표하더라도, 유력 후보가 없는 정당에 표를 주는 것은 사표라고 생각한다. 유력 후보는 두 명 이상 존재하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이원집정부제인 프랑스에서조차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하원에 비례대표를 두지 않고 있고, 미국의 경우 비례대표제도 자체가 아예 없다. 한마디로 대통령제를 하면서 비례대표제도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기형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런 기형성에도 불구하고, 비례제를 통해 다당제를 추구할 정도로 다당제를 원한다면, 차라리 내각제로 권력 구조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인위적으로 다당제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 아니라, 그 의도조차 헤아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정치, 설명이 없어도 국민이 의도를 느낄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