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기계적인 ‘좌우 날개론’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구절을 인용하는 협치 요구에 대한 반박이다. 먼저 방향 설정이 제대로 되어야 하고, 방향이 같았을 때 좌우 날개가 힘을 합쳐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좌우 날개가 허우적거리면 추락하고 만다고 덧붙인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그 방향을 제대로 잡는 역할을 해야 된다면서, 다시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정체성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국가 정체성에 대한 판단이 특정 세력만의 몫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원리에 따라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잘 수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민주적 리더십은 이념을 제시하는 것이라기보다 국민의 의견을 잘 수렴하는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이영희 교수의 저서와 더불어 보편화된 인용구이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균형을 유지하고 나는 것처럼, 좌와 우가 진보와 안정의 균형을 이뤄야 발전할 수 있다는 논지였다. 좌우 날개 균형론이 좌파가 우파를 비판할 때 주로 쓰였던 좌파의 전술적 구호였다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날개에 비유하든 어쨌든 균형론을 받아들인다면 방향 설정에서 필요한 것이 균형이다. 좌우의 날개로 방향을 조정해가면서 날아가는 것이다. 그런 균형을 이루도록 조정하는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새의 머리이고 몸통이다. 리더의 역할이 그것이다. 사실 기형이나 다친 새가 아닌 한, 좌우의 날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허우적거리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좌우 날개가 따로 놀아 추락하는 새’는 비현실적인 가정이고 비유의 오류이다

정치세력이 설정하는 특정 방향은 이른바 이념이다. 후보 시절부터 이념보다는 실용이라고 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들어 오히려 이념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윤 대통령뿐 아니라 이재명, 안철수 등 지난 대선 때 유력 후보들은 대부분 국정의 기준은 이념이 아니라 실용이라고 했다. 중도 유권자를 비롯한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당연했다. 집권 이후에도 윤 대통령은 실용을 말했고, 불과 몇 달 전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탈이념을 말했다. 최근 ‘공산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전면에 내걸면서 이념을 화두로 던진 것이다. 야당과 비판 진영에서는 이념전쟁으로까지 부르고 있다.

공산전체주의 비판은 좌우 이념론으로 이어졌고 ‘좌우 날개론’을 꺼내 빗댄 모양이다. 남북분단 체제가 여전하지만, 이념 대결 구도는 아니다. 물론 좌우 이념 문제의 유산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를 우리 국정의 중심 의제로 삼아야 할 시대적 상황은 아니다. 이번 이념 갈등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서도 나타난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의 이념 문제 제기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이다.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이 모두 탈이념 실용을 표방했던 것도 같은 배경이다. 더구나 이념 문제를 협치의 조건으로 제기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윤 대통령이 강조했던 국가 정체성이나 국정철학은 협치의 조건이 아니라 집권여당 내부에서 고민하고 재정비해야 할 과제였다.

협치, 이전 정부들에서도 자주 거론됐던 바이다. 여야가 극단적으로 충돌하거나 정권의 독주 논란이 될 때마다 협치 담론이 제기됐다. 여야가 협력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협치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았다, 협치의 부재 원인을 상대 탓으로 돌릴 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다만 윤 대통령은 최근 협치의 조건으로 이념적 정체성을 말했다. 자유, 인권, 법치라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 기준과 글로벌스탠다드에 부합해야 협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헌법 정신과 국제적 상식이다. 상대세력은 자신들이 헌법정신과 국제적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고 받아들이겠는가? 자칫 집권세력이 주도하는 하나의 이념 아래 모여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야당에서는 그렇게 공격하고 있다. 윤 대통령 자신이 전체주의 이념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상황에서 자가당착이다.

사실 승자독식의 정치체제에서 연합정부 등을 구성하지 않는 한, 여야 협력의 국정운영은 어렵다. 여당과 야당의 위상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우리의 정치체제에서 협치는 현실적으로 포용적 리더십과 대화의 정치 정도를 의미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협치도 바로 그것이다. 윤 대통령은 현재 정국을 포용의 시대보다 청산의 시대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인사 등용과 리더십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인사정책을 비롯한 국정운영에 그렇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이다. 이념전쟁 논란에 이르러서는 더 그렇다. 설령 여야 대화의 정치가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균형적 사고와 포용적 태도가 윤 대통령이 보편적 가치기준으로 말한 민주주의 리더십에 부합한다.

이전 정부의 과도한 이념 편향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반작용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반작용이 반대 방향의 또 다른 이념 편향으로 가서는 곤란하다. 좌우를 오가는 변증법적 발전을 말하기에는 너무 시대착오적이고 분열적이다. 상대세력과의 타협을 통한 협치 여부 이전에, 대통령 스스로의 포용적 태도와 민주적 리더십을 성찰하며 자문해보는 것도 필요한 듯싶다. 민주주의는 목표 달성보다도 그것을 이루는 과정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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