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월어머니회 회원들과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월어머니회 회원들과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정당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2년 연속 5.18 광주민주화운동(43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습니다. 5.18 정신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주먹을 휘저으며 ‘운동권’처럼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를 포함해 의원 90여명과 추경호 부총리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장관 14명, 대통령실 수석 6명 등의 ‘대 군단’을 이끌고 기념식에 참석해 행사에 대해 큰 의미를 두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에만 기념식을 찾았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2019년, 2020년 등 세 차례 참석했던 것에 비하면 2년 연속 기념식에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습니다.

이렇게 윤 대통령은 각종 기념식이나 행사 등에 대해 참석해 자신의 ‘진심’을 내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번 5.18 기념식에 참석한 윤 대통령도 시종일관 무거운 표정으로 애도와 추념의 진정성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 ‘엄숙함’의 외양을 한 꺼풀 벗겨보면 그가 진심으로 보여준 형식에 비해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공허하고 피상적입니다.

윤 대통령의 기념사를 두고 야권에서는 “역대 최악의 기념사”라는 혹평이 잇따랐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날 기념식에서 총선을 1년 앞두고 김재원 최고위원의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반대’ 발언과 당 내 계속되는 ‘우경화’ 논란으로 상처 받은 호남 민심을 다독여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진심이 담긴 기념사에는 그런 노력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게 중론입니다. 기념사 분량이 역대급으로 짧고 내용도 부실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기념사야 그렇다 치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했던 5.18 정신의 헌법 수록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습니다. 유족들에게 지속적인 상처를 주고 있는 5.18 왜곡과 관련한 질타의 메시지도 없었습니다. 막연한 ‘민주’(13회) ‘자유민주주의’(8회) 등의 피상적 단어들만 공염불처럼 들렸습니다.

5.18 기념식 행사에 진심으로 대하는 것에 상응하는 윤 대통령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메시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과 참모들은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유체 이탈 정치’를 밥 먹듯이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5.18 기념식의 ‘속빈 강정’ 행차와 비근한 예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 ‘식언’입니다. 그는 지난해 1월 간호사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법안이 국회로 오게 되면 정말 공정과 상식에 합당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저희 의원님들께 잘 부탁드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번 간호사법 제정 과정에서 이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버렸습니다.

윤 대통령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상황논리 통치 방식과 ‘나는 맞고 당신은 틀리다’는 일방주의 사고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습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 말과 행동의 일치는 국정 수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국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했던 말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쉽게 뒤집어버리는 ‘식언 정치’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야권의 불신을 초래해 정치가 실종되고 ‘독재’가 독버섯처럼 자라는 토양을 만들어 줍니다. 윤석열 정권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정책적 실수나 ‘식언’을 너무도 가벼이 여기고 간단히 무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가짜뉴스’를 들먹입니다. ‘가짜뉴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와 정보의 허위성 등에 해당하는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때때로 ‘가짜뉴스’를 자신에게 날아오는 비판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방패로 활용합니다.

그 단초는 이미 지난해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 윤 대통령이 보여준 ‘가짜 뉴스’ 인식에서부터 드러났습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정책이나 대안 제시도 ‘가짜 뉴스’로 재단하고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그기에만 급급합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못해 무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당무개입’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자행하고도 그 허물에 대해서는 당연하다는 듯 넘어갑니다. 김건희 여사와 처가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못 본 척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면도날처럼 엄격합니다. 윤 대통령은 노조의 ‘불투명한 회계’만을 놓고 마치 노조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침소봉대해 서릿발 잣대를 들이대며 겁박합니다.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하겠다고 큰 소리 치고도 그냥 입을 닫습니다. 간호사들과 손을 맞잡고 약속한 ‘법안 제정’도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른 척 합니다.

그렇게 무시하면서 ‘대충 잊혀지겠지’ 하는 무책임한 리더십의 결과가 역대 정권 사상 유례없는 지지율 저하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국민들을 오로지 ‘교화의 대상’으로만 보고 위압적으로 군림하려는 습성에서 기인합니다. 국민들을 얕잡아 보기 때문에 자신이 내뱉은 말을 번복하고 부인하고 없었던 일처럼 가볍게 넘어갑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오만하고 독단적인 사고방식은 여야가 그동안 어렵사리 쌓아올린 견제와 균형, 숙의와 상생의 가치들을 순식간에 깔아뭉개고 있습니다. 5월 17일 참여연대 토론회에서 “군부통치 이후 민주화된 한국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윤석열 정권 1년을 평가하면서 “대통령 한 사람이 나라를 이렇게 바꿔버릴 수도 있구나” 하며 장탄식을 내뱉는 국민들도 많습니다.

‘내가 잘 못하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남이 잘 못하면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윤석열 정권의 통치 논리는 결국은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적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참모들은 ‘무서운’ 윤 대통령 눈치만 보느라 모든 일을 대통령에게만 떠맡기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정치 경험 부재 때문에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는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국회의원은 선거를 통해 그 책임을 심판받지만 ‘정치 신인’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아무리 본인이 잘못을 해도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엄정함과 심각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5.18 기념식에서 주먹을 크게 휘두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부른다고 해서 모두 ‘투사’가 아닙니다. 윤 대통령이 휘저은 주먹 안에 공기밖에 없다면 그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가짜 정치’일 뿐입니다. 자신이 내뱉은 말을 천금처럼 여기고 그 약속을 목숨 바쳐 지키려는 대통령의 모습은 어디에 있습니까.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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